BBC, "세븐틴 곡에 AI 사용"
정면 반박에 기사 내용 수정
AI 음악 제작시장 급성장에
저작권 문제 '뜨거운 감자'
법적기준 없어 "법제화 시급"
"그룹 세븐틴의 뮤직비디오는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장면을 포함하고 있으며, 앨범 또한 AI로 만든 가사가 포함돼 있을 수 있다."
11일 영국 BBC 뉴스 기사
지난 11일 영국 BBC의 뉴스 기사 중 한 문장이 국내 가요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BBC는 'K팝의 AI 실험은 성공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가요계의 AI 활용 실태를 소개했다. BBC는 특히 세븐틴의 사례를 부각했다. BBC가 거론한 세븐틴의 뮤직비디오는 지난 4월 공개된 신곡 '마에스트로'의 영상이다. 영상에는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그래픽 화면이 담겼다. 동시에 멤버 우지의 신곡 발표 기자회견 발언을 근거로, 세븐틴 노래 작사 과정에서 AI가 활용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당시 우지는 "AI로 곡 만드는 연습을 해 봤다. 첨단기술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발맞춰 발전하고 싶다"는 견해를 밝혔다.
BBC 보도가 화제를 모으자 세븐틴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즉각 반박했다.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는 우지는 지난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세븐틴의 모든 음악은 인간 창작자가 작사 및 작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BBC 기사에 뿔난 세븐틴 팬들도 '마에스트로' 뮤직비디오 영상 댓글에 우지의 메시지를 그대로 옮겨 적는 방식으로 항의했다. 소속사 플레디스가 BBC에 정정보도를 요청한 결과, 해당 기사에서 AI의 작사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이 빠졌다.
인간·AI가 만든 콘텐츠 저작권은?
세븐틴에 관한 BBC 보도는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가요계에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이 활발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시중에는 AI 기반 음원 제작 프로그램이 다수 출시돼 있어 일반인조차 손쉽게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시대가 열렸다. 한편으론 AI로 생성된 콘텐츠를 둘러싼 저작권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가수와 작곡·작사가 등 업계 종사자들은 AI의 영역 침범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로선 법적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분쟁이 예상된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가요의 경우 음원이 저작물로 인정돼야 저작권이 생기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곡 등록도 가능하다. 협회에 등록된 곡에 대해서만 음원 재생에 따른 수익이 발생한다.
AI가 만든 음악은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창작 주체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AI 작곡가 '이봄'이 협회에 등록한 음악 6곡이 저작권료 지급 중단 결정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곡 등록 당시엔 협회가 AI의 작곡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밝혀지면서 조치가 취해졌다. AI가 만든 곡은 저작물이 아닌 탓에 복제나 도용 등 행위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을 수도 없다.
문제는 인간과 AI가 함께 곡을 만들었을 때다. 작곡, 작사 과정에서 각자의 기여가 혼재돼 있는 곡이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법적 기준이 아직 없다. 저작권협회 관계자는 "인간의 창작 기여도가 있다면 저작권을 조금은 인정하는 게 요즘 추세라고 판단되지만, 그 기준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다"면서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인간과 AI가 만든 곡이 협회에 등록된 사례가 없다.
온라인에선 AI 가수의 커버곡 인기
AI는 인간의 가창력도 넘보고 있다. 최근 유튜브 등에서는 AI가 특정 가수의 목소리로 부른 '커버(Cover)곡'이 인기를 끌고 있다. AI가 딥러닝(스스로 데이터 학습) 기술로 그룹 '퀸'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학습한 뒤 아이유의 노래 '내 손을 잡아'를 부르는 식이다. 1991년 사망한 프레디 머큐리가 20년 뒤에 나온 아이유 노래를 부르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AI가 판타지를 실현한 셈이다. AI 커버곡을 들은 가요계 팬들은 대체로 "음색이 소름 돋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호평을 내놓고 있다. 1년 전 유튜브에 올라온 AI 프레디 머큐리의 '내 손을 잡아' 커버곡 영상은 조회수 175만 회를 기록했다. AI 박효신의 '헤어지자 말해요(131만 회)' AI 임재범의 '하입보이(88만 회)' AI 아이유의 '밤양갱(87만 회)' 등도 인기 콘텐츠다. 모두 실제 가수가 부른 곡이 아니다.
이 경우 AI가 모방한 가수의 권리 침해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저작권법은 어떤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음성도 '저작인접권' 개념으로 법적 보호를 하고 있다. 가수의 노래를 무단으로 복제, 재생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면 저작인접권 침해가 된다. 특허법인 에스제이파트너스의 한상은 변리사는 "AI 커버곡은 가수 음성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고, 목소리를 학습해서 거의 유사하게 내보내는 형태이다 보니 법문상으로는 가수의 저작인접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법률로도 위법행위 여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부정경쟁방지법은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등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에 대한 무단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법무법인 공간의 김한규 변호사는 "부정경쟁방지법은 위조품 제조 등 상품 거래를 규제할 목적으로 마련된 법이어서 AI 사례까지 적용이 가능할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가수가 실제로 부른 것처럼 대중에 오인을 줬기 때문에 목소리 주인공이 민사상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수들 "AI의 목소리 약탈 막아야"
이런 현실 속에서 가수들은 불쾌함을 드러냈다. 가수 장윤정은 지난 3월 유튜브 채널에서 AI 커버곡을 두고 "이러면 가수가 리코딩을 왜 하나. 내 목소리를 넣은 AI를 돌려서 음원을 팔면 된다"며 허탈감을 표출했다.
해외에서도 지난 4월 빌리 아일리시, 케이티 페리 등 유명 가수 200여 명이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도용하는 AI의 약탈적 사용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예술가권리연합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이들은 테크기업에 "작곡가와 가수의 예술성을 훼손 및 대체하거나, 작업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거부하는 AI 음악생성 도구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가요계 논쟁과 별개로 AI를 활용한 음악 콘텐츠 제작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시장분석업체 마켓닷어스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음악생성 AI 시장 규모는 2022년 2억2,900만 달러(약 3,163억 원)에서 2032년 26억6,000만 달러(약 3조6,745억 원)로 1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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