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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돔 뒤집은 뉴진스 '푸른 산호초'… 일본은 지금 '레트로 소비' 중

입력
2024.07.22 04:30
수정
2024.07.22 09:0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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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980년대 향수 자극한 뉴진스
어린이 장난감·게임기 다시 찾는 어른
"쇼와시대 추억에 지갑 여는 일본인들"

한 일본인 엑스(X) 이용자가 지난 3일 자신의 계정에 한국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왼쪽 사진)와 1980년대 일본 인기 여가수 마쓰다 세이코(오른쪽)를 비교한 사진을 올렸다. 엑스 캡처

한 일본인 엑스(X) 이용자가 지난 3일 자신의 계정에 한국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왼쪽 사진)와 1980년대 일본 인기 여가수 마쓰다 세이코(오른쪽)를 비교한 사진을 올렸다. 엑스 캡처

"'푸른 산호초'를 부르는 하니(뉴진스 멤버)를 본 순간 마쓰다 세이코의 하네다공항 무대가 떠올랐어요. 4050세대는 반응할 수밖에 없죠."

일본 도쿄에 사는 40대 주부 하기와라 가나에(가명)는 지난 15일 지인들과 한국 걸그룹 뉴진스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마쓰다 세이코를 회상했다고 말했다. 뉴진스는 지난달 26, 27일 도쿄돔에서 팬 미팅을 열며 9만 명 이상의 팬을 불러 모았다. 하니는 이때 마쓰다의 '푸른 산호초'를 불렀는데 도쿄돔을 들썩이게 만들며 큰 화제를 모았다. 공연장에서 유독 조용하기로 소문난 일본인들이 하니 노래에 맞춰 후렴구를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를 정도였다.

일본인들이 반응한 이유는 1980년대 일본의 전설적 여가수 마쓰다를 떠올리게 해서다. 한국에서 온 17세 소녀의 열창에 많은 일본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1980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글과 무대 영상을 공유하며 열광했다. 하기와라가 말한 무대는 마쓰다가 1980년 8월 14일 일본 북쪽 지역 홋카이도 삿포로 행사를 마치자마자 도쿄 하네다공항 활주로에서 헐레벌떡 내리며 '푸른 산호초'를 부른 장면이다. 생방송 시간을 맞췄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색 원피스를 살랑거리는 모습은 지금도 마쓰다의 대표 무대로 손꼽힌다.

마침 이날 파란색 줄무늬가 들어간 흰 티셔츠와 긴 하얀색 스커트, 짧은 단발머리로 등장한 하니는 마쓰다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하니의 무대 덕에 일본의 젊은 층과 기성세대가 추억 하나를 공유하게 됐다. 엑스(X)에서는 "최고의 선곡" "삼촌 팬들을 겨냥했다" "주변 아저씨들이 난리가 났다"는 글이 넘쳐났다.

일본 전성기 그리워하는 쇼와시대 소비

한국 걸그룹 뉴진스가 11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024년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 위촉식에 참석해 한국관광공사 캐릭터 인형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한국 걸그룹 뉴진스가 11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024년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 위촉식에 참석해 한국관광공사 캐릭터 인형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하니 무대의 인기는 '레트로'(복고)를 자극한 것이 적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쇼와시대 향수'를 일으키며 기성세대가 반응했고, 레트로를 좇는 젊은 층 문화를 겨냥한 게 맞아떨어지며 전 세대가 환호했다. 쇼와시대의 마지막 시기인 1970, 1980년대는 버블(거품) 경제 붕괴 이전으로, 일본의 전성기 시절이었다. 미국을 압도할 경제력으로 승승장구했고, 가요·만화·방송 등 일본 문화 하나하나가 아시아의 트렌드가 되는 시대였다. 세대·트렌드 평론가 우시쿠보 메구미는 아사히신문 계열 시사주간지 아에라에 "하니의 '푸른 산호초' 무대 인기는 레트로가 가진 귀여움을 자극한 것은 물론, 요즘 젊은 층이 좋아하는 쇼와시대의 매력을 잘 표현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하니 무대의 인기가 보여주듯 요즘 일본의 히트 상품은 디지털 관련 제품이 아니라, 아날로그 제품이다. 쇼와시대 향수를 느끼려는 사람이 늘어난 탓이다. 후지필름의 즉석 사진기 '인스탁스' 인기가 이를 방증한다. 사진을 찍는 즉시 인화가 가능한 제품으로, 도쿄 도내 가전제품 판매처를 돌아다녀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본에서는 '체키'로 불리는데 매대마다 '품절' 표시가 걸려 있어 예약이 필수다. 도쿄 추오구의 가전제품 매장 빅카메라의 직원은 "제품과 필름은 들어오는 즉시 동난다. 매대가 빈 지 꽤 오래됐다"고 말했다.

현재 인스탁스는 잘파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 출생)의 없어서는 안 될 트렌드 상품이다. 1998년 출시돼 2002년 연간 판매 대수 100만 대를 달성하는 등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이후 디지털카메라·스마트폰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판매량이 급감했다.

아날로그 '불편함'에 매력 느끼는 MZ

일본 쇼핑 매장 돈키호테 도쿄 긴자 지점이 지난 14일 후지필름 즉석 카메라 제품 인스탁스(체키)가 모두 팔리자, 매대에 품절 표시를 걸어 놨다. 도쿄=류호 특파원

일본 쇼핑 매장 돈키호테 도쿄 긴자 지점이 지난 14일 후지필름 즉석 카메라 제품 인스탁스(체키)가 모두 팔리자, 매대에 품절 표시를 걸어 놨다. 도쿄=류호 특파원

하지만 필름 카메라를 구경한 적도 없는 잘파세대 덕에 '부활'했다. 이들이 옛날 사진기를 찾는 이유는 즉석 인화 사진을 선물하는 문화가 유행하기 때문이다. 처음 겪는 신기한 경험을 소중한 사람과 특별하게 공유하고 싶은 심리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를 촬영해 팬 미팅, 사인회 때 건네는 것이 새로운 아이돌 응원법이 됐다. 친구를 촬영한 뒤 선물로 주거나, 휴대폰 또는 가방을 장식하는 패션 아이템 기능도 한다.

2018년 인스탁스의 연간 판매량은 1,000만 대에 달했다. 후지필름은 '인스탁스 효과'로 2021년부터 3년 연속 역대 최고 매출을 경신했다. 잘파세대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이 늘면서 다시 너도나도 아날로그 카메라를 찾기 시작한 덕분이다. 인스탁스의 인기는 일본을 넘어 세계로 뻗어갔고, 지난해까지 누계 판매 대수는 8,000만 대를 넘어섰다.

필름 카메라 인기에 도전장을 내민 업체도 등장했다. 일본 사무기기·카메라 제조 업체 리코는 지난 12일 필름 카메라 '펜탁스17'을 출시했다. 리코가 21년 만에 출시한 필름 카메라다. 최근 레트로 제품 인기에 가능성을 본 것이다. 새 제품을 기획한 스즈키 다케오는 산케이신문에 "필름 카메라를 사려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중고품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새 필름 카메라는 제품 보증도 되니 안심하고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마케팅 업체 시부야109랩의 나가타 마이 소장은 젊은 층의 레트로 소비 문화와 관련, 지지통신에 "디지털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독창성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SNS에서는 사진과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는 반면, 아날로그는 모두 수작업으로 자신이 직접 경험해야 한다. 이 과정을 매력적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날로그, 레트로 문화에서 경험해야 하는 '불편함'을 오히려 특별하다고 느낀다는 의미다.

구매력 갖춘 30~50대 겨냥한 레트로 전략

일본 도쿄 도내의 한 편의점 내 한쪽 벽면이 지난 14일 캡슐토이로 뎦여 있다. 도쿄=류호 특파원

일본 도쿄 도내의 한 편의점 내 한쪽 벽면이 지난 14일 캡슐토이로 뎦여 있다. 도쿄=류호 특파원

젊은 층은 물론, 30·40·50대도 레트로에 지갑을 열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쇼와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 당시 물건에 진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다. 더욱이 잘파세대에게는 없는 구매력도 갖췄다. 심승규 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는 "일본 기성세대는 '잃어버린 30년'(일본 경제 침체기) 시기에 성장한 젊은 층과 달리, 과거 잘나가던 시대 때 경제적 여유로움과 여러 문화를 누린 세대"라며 "지금도 일본의 주 소비층은 청년이 아닌 기성세대로, 기업들은 이들이 지갑을 열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기계에 동전을 넣고 돌리면 작은 장난감이 든 동그란 플라스틱 통이 나오는 '캡슐토이'는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새로운 놀이가 됐다. 짱구, 헬로키티, 도라에몽 등 과거 인기 만화 속 캐릭터를 뽑을 수 있어 어릴 적 자신이 좋아했던 캐릭터 장난감을 갖기에 좋은 도구다. 일본캡슐완구협회 이사인 쓰즈키 유스케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캡슐토이는 아동 인구 감소로 10년 전부터 주요 고객이 성인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캡슐토이는 과거 어린이들이 장난감을 얻는 수단이었기에 동네 문구점이나 슈퍼마켓 모퉁이에 있었지만, 주요 고객층이 성인으로 바뀌면서 이제는 전문 매장이나 대형 쇼핑센터에 자리하게 됐다. 일본캡슐토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캡슐토이 시장 규모는 1,150억 엔(약 1조143억 원)으로, 전년(720억 엔·약 6,350억 원)보다 약 160% 증가했다.

30~50대 남성도 레트로 소비에선 예외가 아니다. 최근 이들을 중심으로 과거 인기를 끌었던 옛날 게임기가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닌텐도가 1983년 출시한 가정용 게임기 '패미콤'은 남성 기성세대가 다시 찾는 대표적인 레트로 장난감이다. 출시 후 약 6,200만 대가 팔릴 만큼 과거에는 남자아이들의 필수 아이템이었으나, 2003년 단종되면서 중고품 거래가 활성화됐다. 중고 서적·게임 판매 매장인 북오프 관계자는 요미우리신문에 "지난해 패미콤 관련 상품 매출이 2020년의 7배로 늘었다"며 "주요 고객층은 40·50대 남성"이라고 말했다.

일본 편의점도 '레트로 전략'에 한창이다. 요즘 일본의 편의점에는 '부활'이라는 글자가 여기저기에 붙어 있다. 4050세대를 편의점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 과거 인기 제품을 재출시하는 것이다. 일본 편의점 업체 세븐일레븐은 이달 초 1980, 1990년대 스타일의 멜론빵과 초코빵, 오코노미야키빵을 다시 선보였다. 훼미리마트는 이달 중순 '다방 디저트' 상품을 선보였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디저트인 멜론 크림소다와 푸딩을 다방 스타일로 재해석해 옛날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심승규 교수는 "일본은 쇼와시대, 버블시대를 그리워하는 문화가 있다"며 "이런 감성을 가진 사람들의 구매력을 시장에 끌어들이고자 그들의 향수를 자극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쿄= 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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