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시인선 114편 무작위 낭송
3일 만에 11만 통…뜨거운 반응
"좋은 작품 알게 돼"·"하루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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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자리 숫자로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정영효 시집.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일층.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나타난다…"
통화만으로 한 편의 시를 낭송해주는 이 번호는 지난 9일부터 출판사 문학동네가 운영하고 있는 '인생시 전화' 이벤트다. 지정 번호로 전화를 걸면 문학동네 시인선 101~214번에 수록된 114편의 시 중 하나가 무작위로 송출된다. 불과 3일 만인 12일 오전 기준 무려 11만243통의 전화가 걸려올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참여자들은 '시를 선물받은 것 같다'는 후기를 남겼다. 다섯 번 전화해 각기 다른 시를 들었다는 강채린(21)씨는 "어떤 시가 나올지 모르니까 번호를 누를 때마다 설렜다"며 "덕분에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했다"고 했다. 김경원(20)씨는 "집에서 편하게 전화를 걸었다가 안미옥 시인의 '홈'이란 시를 들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일렁였다. 하루의 낭만을 얻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들은 시를 필사하거나 시집을 구매한 뒤 인증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엑스(X)에 이규리 시인의 시 '당신은 첫눈입니까' 필사 사진을 남긴 김모(28)씨는 "통화로 처음 접한 시인데 깊게 음미하고 싶어 적어봤다. 남은 행사 기간에 생각날 때마다 전화하려 한다"고 했다.
"낭만·낭독·우연 챙겨가세요"
이번 이벤트는 지난달 26일부터 5일간 열린 서울국제도서전(SIBF)에 문학동네가 설치했던 '시 선물 전화부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전화를 걸면 무작위로 시가 낭송되는 참여형 행사였는데, 5일간 무려 1,700통이 걸려왔다. 대기 줄이 길어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비대면 통화 행사도 준비했다는 게 출판사 측 설명이다.
강원도에 살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엔 참가하지 못했다는 김민정(36)씨는 "서울에 문화 행사가 몰려있어 불편했는데 이렇게라도 참여할 수 있어 좋다"며 "비슷한 비대면 행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이현자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예상했던 2030 독자들뿐 아니라 10대도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며 "젊음의 계절인 여름에 낭만, 낭독, 우연을 선물해드리고 싶다는 기획 취지가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오는 24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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