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소년병 6명 진실 규명 결정
트라우마·교육기회 상실 등 어려움 겪어
자원입대 아닌 사실상 유인징집도 있어
10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전날 제82차 위원회를 열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소년병 6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18세 미만 미성년자로 병역 의무가 없었는데도 정규군으로 동원됐던 소년병은 약 3만 명에 달한다. 현행법을 소급 적용해 당시 소년병 모집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이 겪은 전쟁 트라우마, 교육의 기회 상실 및 사회 부적응, 자립 기반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던 피해 사실 등을 인정해 실질적인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권고했다.
1951년 1월, 이경종(90)씨는 만 16세의 나이로 중학교를 떠나 전쟁터로 향했다. 이씨의 아들 이규원(62)씨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중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전쟁이 터졌고 이후 바로 입대하셨다"고 말했다. 최전선에서 지뢰나 폭발물 등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맡았던 이경종씨는 어린 나이에 탈영병이 총살당하는 걸 지켜보고, 시체를 옮기는 등 잔혹한 경험을 했다. 또 당시 제대로 된 군번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이규원씨는 "아버지는 입대 당시 탈영병의 남는 군번을 받았다가 이후에 정식 군번을 받았다"며 "보상은커녕 군대 내에서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아시고 굉장히 실망이 크셨다"고 털어놨다.
1950년 8월 20일, 만 17세의 나이로 입대해 소년병으로 분류된 고(故) 하명윤씨도 마찬가지였다. 하씨의 아들 하의홍(52)씨는 "군번을 받지 못했던 아버지는 만기 전역 조건을 채우기 위해 정식 입대를 다시 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렇게 3년 10개월간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는데도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셨다"며 "총알이 철모를 관통하는 등 어린 나이에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음에도 제대로 된 국가 지원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겉으로만 자원입대 형식만 갖췄을 뿐 사실상의 유인징집으로 입대한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게 진실화해위 분석이다. 하씨의 조카 하경환(48) 변호사는 "큰아버지가 다니던 학교에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훈화하는 등 입대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나이에 입대한 것을 온전한 개인의 선택으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어르신이 되신 소년병들에 대해 국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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