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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엔 김건희 여사 축사도 했는데...서울국제도서전, '정부 지원금 0원'으로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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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엔 김건희 여사 축사도 했는데...서울국제도서전, '정부 지원금 0원'으로 개막

입력
2024.06.26 16:15
수정
2024.06.26 18:38
20면
0 0

국고보조금 '7억원→0원'...자립 실험대
기금 모금 자구책에도 행사 규모 축소 한계
초청 규모 감소, 펠로십 생략 등 아쉬움
정부 개입 없는 완전한 자립 기대감도

대한출판문화협회가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2024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2024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66년째 달려온 준마(駿馬)는 당근 없이 달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첫 실험이 시작됐다. 당근은 '국고 보조금'을 의미하는 출판계 은어. 올해 66회째를 맞은 국내 최대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 얘기다.

26일 도서전을 주관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에 따르면 이날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은 이례적으로 국고 보조금 없이 진행된다. 도서전엔 약 40억 원의 비용이 드는데, 지난해까지는 정부가 10억 원 내외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협과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채 개최되다 보니 지원금이 '0원'이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는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같은 도서전이 됐다"며 "출협 회원사인 출판사의 기부금과 참가 업체들이 낸 돈만으로 치러지는 행사"라고 밝혔다.

문체부와 출협은 지난해 8월 도서전 수익금 정산 문제로 충돌했다. 박보균 당시 문체부 장관이 윤 회장과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를 보조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 의뢰하고 출협이 출판인 명예를 훼손했다며 문체부 공무원을 맞고소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이후 문체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2018~2022년 서울도서전 사업 감사 후 3억5,900만 원을 반납하라고 통보했지만 출협은 이에 반발하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문체부는 도서전 예산(6억7,000만 원)을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배정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예산과 관련해 "(출협에 주는 지원은 없었지만)일부는 도서전에 참여하는 출판사 프로그램 및 홍보비용을 보전해주는 식으로 지원했다"고 밝혔다.

문체부 장관이 바뀐 뒤에도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올해 초 취임한 유인촌 장관은 이번 도서전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개막식엔 김건희 여사가 참석해 축사를 하는 등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제스처를 했다. 26일 개막식에는 전재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포함한 야당 인사 5명이 참석했으나 정부·여당 인사는 전병극 문체부 차관이 유일했다. 출협 관계자는 "다른 해외 도서전은 해외 인사에 대한 외교 의전을 위해서라도 장관 등 주요 인사가 참석한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예산 부족으로 규모 축소...자구책 마련했지만

대한출판문화협회 임원들이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축사 중 정부 지원 중단에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출판문화협회 임원들이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축사 중 정부 지원 중단에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출협은 재정 독립을 위한 20억 원 규모의 기금 조성으로 맞섰다. 하지만 도서전 규모 축소와 출판사들이 내야 하는 비용 상승 등 부작용은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도서전에는 36개국에서 530개 출판사(국내 360개사, 해외 170개사)가 참가한 데 비해 올해는 19개국의 452개 출판사(국내 330개사, 해외 122개사)로 규모가 줄었다. 출판사마다 배정되는 기본 부스(3mx3m 규모)를 줄이는 대신 대형 부스를 늘리고, 한 부스에서 여러 출판사들의 공동 참가를 허용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예산에 쫓기면서 부스 비용이 상승했다. 출판사들이 사전에 구입한 기본 부스 비용은 지난해 180만 원에서 올해 220만 원으로 늘었다.

K출판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해외 초청자 규모가 축소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올해 도서전을 찾는 작가와 연사는 185명으로, 지난해(215명)보다 줄었는데 다수가 해외 초청자의 감소분이다. 주 대표는 "해외 유수 출판사를 초청하는 '펠로십 프로그램'은 생략했고 한국 작품의 저작권 상담 부스 규모도 축소했다"며 "노벨상 수상 작가 등 유명 작가를 더 많이 초청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 간섭 벗어난 자립 기회" 기대감도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지원 중단이라는 악재가 오히려 정부 입김을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란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이번 도서전에선 홍보 대사를 소설 주인공 '걸리버'에게 맡기고 내부 전시를 축소하는 등 비용을 절감하는 아이디어가 실행됐다. 이벤트로 무료로 증정했던 한정판 도서전 앤솔로지 책자를 유상 판매하고, 도서전 주제작인 김연수 작가의 '걸리버 유람기'를 유료 판매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사전 판매한 두 책은 앤솔로지인 '리미티드 에디션-후이늠'이 소설 부문 11위, '걸리버 유람기'는 22위(알라딘 집계)에 올랐다.

도서전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커졌다. 출협에 따르면 유료 입장권을 사전 예매한 인원은 최소 4만 명(25일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 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현장 구매를 포함하면 입장권 판매 규모는 역대 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제 강연 등 도서전 기간 운영되는 프로그램 입장권도 전체 매진됐다. 주최 측은 올해 도서전 운영 경험을 발판으로 내년부터 '독립 축제'로서의 밑그림을 새롭게 그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주 대표는 "관의 개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독립적인 운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있었다"면서 "국고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일부 프로그램을 보강해 가며 도서전의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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