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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가 사라진 정치

입력
2024.06.21 18: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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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몰염치에 대한 부끄러움은 국민 몫
두 달 만에 복귀하는 한동훈도 예외 아냐
철저한 자기 반성 등 최소한 염치 보이길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9일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하기 전에 창밖을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9일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하기 전에 창밖을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염치가 정치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양극화한 정치 현실에 과몰입된 이들에게 염치를 요구하는 것은 이젠 고리타분한 잔소리가 됐다. 정치인의 몰염치에는 이유가 있다.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무조건 자신의 진영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어서다. 여야를 불문하고 자신의 견해만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의견은 가짜뉴스로 치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배경이다.

이에 따른 부끄러움은 양 극단에 속하지 않은 국민 다수의 몫이다. 국민의힘 의원 워크숍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맥주잔을 채워주고 의원들의 환호 속에 웃으며 어퍼컷을 날리는 모습을 보라. 4·10 총선에서 국민의 회초리를 맞고서 고개를 숙였던 이들이 맞나 싶었다. 총선에서 이긴 더불어민주당은 어떠한가. 민생을 챙기겠다더니 이재명 대표의 연임과 대권 행보를 위한 당헌 개정으로 '1극 체제' 구축에 몰두하고 있다. 위인설법을 바로잡기는커녕 공개 석상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 대표님"이라는 발언이 서슴없이 나온다.

대통령과 야권 유력 대권주자 간 몰염치 경쟁만으로 충분한데, 또 다른 한 명이 가세할 채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23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총선에서 원톱 체제로 집권여당을 진두지휘했으나 기록적 참패 후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한 지 두 달여 만이다. 별다른 상황 변화가 없는데도 패장이 자신이 내려놓은 자리를 이렇게 빨리 다시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국민의힘이 그토록 비판하는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2022년 대선 패배 후 두 달 만에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선언으로 정치에 복귀한 사례가 있긴 하다. 싸우면서 닮는다더니 정치팬덤을 뒷배 삼아 상식을 깬 정치 행보는 이 대표의 사례와 포개어진다.

국민의힘의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란 분위기를 감안하면, 한 전 위원장이 이번 기회를 놓치기엔 아까울 것이다. 총선 참패에 대한 혁신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회에서 다수 야당에 속수무책인 집권여당의 지리멸렬함도 재등판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두 달여 만의 복귀가 몰염치하다는 비판쯤이야 당대표로 선출된 후 성과로 보여주면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현실 정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 전 위원장은 정치 복귀와 동시에 총선 참패에 대한 성찰 여부 질문에 직면할 것이다. 총선 참패의 원인은 윤 대통령의 실정이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과 같이 야당을 겨냥한 네거티브에만 몰두했던 한 전 위원장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그는 오는 23일 당대표 선거 출마선언에서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등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당정관계 재정립 등 당 혁신, 정치 및 민생 회복 방안, 국가 비전 등을 자신의 얘기로 풀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까지 안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이 모든 사안에 해답을 찾아내기에는 두 달여 칩거 기간은 너무나 짧다. 더욱이 칩거 기간 그가 띄운 이슈들을 살펴보면 우려가 앞선다. 논란이 된 지구당 부활과 헌법 84조에 대한 해석은 당내 원외 세력 구축과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겨냥한 것이다. 그의 관심이 민생이나 국가 미래에 가닿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치 복귀를 알리는 자리에서 현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면, 적어도 총선 참패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만은 보여주길 바란다. 몰염치에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정치인들과 차별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회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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