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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출입금지'라는 혐오의 자유

입력
2024.06.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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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인천의 한 헬스장이 출입구에 붙인 '아줌마 출입금지' 안내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인천의 한 헬스장이 출입구에 붙인 '아줌마 출입금지' 안내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아줌마들 텃세 조심해.” 5년 전, 수영을 시작한다는 내 말에 지인이 한 말이다. “여자들 조심해.” 그즈음 이런 말도 들었다. 업무로 만난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50대 남성은 친구가 ‘억울하게’ 성추행 가해자가 됐다며 옆에 있던 젊은 남성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내가 현실에서 마주한 여성에 대한 멸시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중년 여성은 수영장 신입 회원을 괴롭히고, 젊은 여성은 무고한 남성을 음해한다고 낙인찍고 싶지만 대놓고 말할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조언을 빙자해 경멸했다.

이젠 허술한 위장조차 필요 없어진 걸까. 인천의 한 헬스장은 입구에 ‘아줌마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공짜를 좋아하거나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면 ‘아줌마’라는, ‘아줌마와 여자 구별법’도 함께였다. 아줌마들이 1, 2시간 동안 빨래를 해서 수도요금이 많이 나오고 젊은 여성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해 고객이 빠져나간다는 게 사장의 주장이다.

인천의 헬스장이 내건 '아줌마와 여자 구별법'.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인천의 헬스장이 내건 '아줌마와 여자 구별법'.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성별을 떠나 공중 도덕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음에도 중년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아줌마’로 판명난 여성은 징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겁박하는, 전형적인 여성 혐오다. 상대를 망신 주고 굴복시키기 위해 동원된 혐오이며 기저에는 “맞을 짓을 했으니 맞는 것”이라는 폭력적인 시선도 깔려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였다면 온라인에 넘쳐나는 여성 혐오가 잠시 공중시설에 등장한 해프닝으로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장은 당당했다. 한바탕 논란 후 한 방송사가 헬스장에 가보니 안내문은 그대로였고,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거(안내문) 보고 화내시는 분들이 저는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에겐 이 혐오가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노 키즈존’ ‘노 시니어존’ 등 연령 차별 업소의 영향도 적지 않았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간 진행돼 온 ‘혐오의 제도화’가 한 헬스장에서 ‘자연스럽게’ 재현된 것이라고 본다.

‘일베’ 등 남초 커뮤니티에서 소수가 공유하던 반인륜적 여성·약자 혐오는 지난 10년간 공적 공간으로 확장됐다. ‘이대남’(20대 남성)의 대변자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여성의 보행 안전에 대한 공포를 “과대망상”,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을 “비문명”이라 조롱하며 이를 주도했다. 책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산발적으로 분출되던 혐오와 불만이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정치인에 의해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았고, 이준석이라는 표상은 일베적 멘털리티가 정당성을 확보하고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며 조직화되고 주류화되는 문을 열어젖혔다.” 그가 공공 정치에 끌어들인 혐오는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1호 단문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로 완벽히 제도화됐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를 내면화했다. “(사장이)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수많은 댓글은 ‘아줌마에게 고통받는 소상공인’으로서의 사장의 피해자 서사를 완성해줬고, 찬성과 반대 의견을 중계한 언론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찬반의 문제로 둔갑시켜 “차별에 찬성해도 된다”고 믿게 만들었다.

누군가 사회 규범을 어겼을 때 특정 집단 전체를 죄인 취급하는 것이야말로 ‘망상’에 가까우며, 이런 행동을 용인하는 사회가 ‘비문명’이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까지 이 사건을 조명한 것 역시 '혐오의 자유'가 횡행하는 비문명성 때문일 것이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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