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매년 25% 성장...문학 독서 장르 편입
희곡 낭독, '체험' 중시하는 독서 트렌드 부합
'쉬운 대사'... "작품 몰입 쉽고 이해는 깊게"
50대 직장인 이모씨는 요즘 '희곡'에 푹 빠졌다. 지난해 문학도서관 소전서림이 기획한 희곡 읽기 모임에 참석한 것이 계기였다. "책 읽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희곡 작품을 소리 내서 읽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었어요. '이 인물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고민하면서 제 목소리로 표현해보는 시간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울림이 있더라고요."
이씨처럼 낭독하는 재미에 빠져 희곡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몇 년 새 급격하게 늘어난 북클럽에서 희곡이 새로운 독서 장르로 떠오르면서다. 목소리를 내서 읽는 행위, 인물로 빙의하는 연기에 집중하는 것이 희곡 독서의 묘미다. 이씨는 "대화글을 소리 내 읽는 건 글을 눈으로 읽는 것과 다른 매력이 있다"며 "이 세계에 눈을 떠보니 의외로 희곡에 특화된 모임이 많고 참가자 연령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시와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을 읽을 때와 달리 "작품 속으로 바로 들어가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좋더라"는 게 이씨의 말이다.
희곡 읽는 소리 낭랑한 서점가
희곡의 재발견은 북클럽의 인기와 궤를 같이한다. 북클럽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독서의 폭이 확장됐고, 직접 읽고 연기할 수 있는 희곡이 새로운 독서 장르로 편입된 것. 고유의 안목으로 희곡을 선별하고 낭독 프로그램이나 연기 워크숍을 진행하는 서점들이 생기면서 문턱이 낮아진 것도 한몫했다. 희곡 전문서점 '인스크립트'는 한 달에 두 번 희곡을 읽고 연기하는 낭독회가 열리는 극장으로 변신하는데 매회 만석이다. 서점극장 '라블레'도 작가와 독자가 참여하는 낭독 모임을 열어 연극과 책을 오간다. 라블레 운영진은 "작가나 배우가 작품을 읽는 낭독회를 정기적으로 열었는데 그때마다 참여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구가 빗발쳤다"며 "독자 4~6명을 모아 희곡을 읽는 모임을 진행해보니 전문 배우 못지않은 열정이 느껴지더라"고 했다.
희곡 판매도 약진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북스가 2019년 론칭한 국내 유일 희곡 브랜드 '지만지드라마'에 따르면 매년 희곡 판매량이 25%가량 증가세다. 커뮤니케이션북스 관계자는 "2020년엔 도서 판매량 상위 100종 가운데 희곡이 10종이 불과했는데 지난해엔 25종으로 늘어났다"며 "희곡을 찾는 독자가 점점 늘고 있어 완성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최근 전체 희곡 시리즈에 대한 검수 작업을 끝냈다"고 말했다.
무엇이 희곡을 읽게 하나
희곡의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독자가 소리 내서 읽음으로써 작품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묘미다. 책이란 본디 혼자 읽는 것이지만 최근엔 적극적으로 작품을 탐색하면서 영감을 얻으려고 하는 '체험 독서'가 주목받는 추세다. 문학과 연극의 경계에 있는 희곡은 기본적으로 발화를 전제로 쓰인 글이기 때문에 대사를 소리 내 완독했을 때 극적 효과를 누린다. 다수의 희곡 읽기 모임을 진행한 김태형 출판사 제철소 대표는 "작품과 거리를 두고 감상하는 시, 소설 같은 장르와 달리 대사를 치며 작품에 바로 흡수되는 독특한 장르적 특성이 있다"며 "참가자가 각자 한 인물을 맡아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때문에 대사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볼 수 있고 자신만의 해석을 담을 수 있어 다른 독서 프로그램에 비해 집중도가 높다"고 했다. 그는 "독서 문화를 선도하는 이른바 '얼리어답터'들이 새로운 장르에 대해 눈을 돌리게 된 것도 희곡이 각광받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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