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자전거 로드 무비 소설
‘왓 어 원더풀 월드’ 쓴 정진영 작가
“작은 성취가 쌓여 본인의 힘 된다”
퇴사한 ‘문희주 과장’의 환송 회식 때 직원들에게 사장이 나눠준 로또 복권 중 한 장이 1등에 당첨됐다. 당첨 금액은 36억6,048만 원. 아쉬움에 길길이 날뛰던 사장은 사라진 문 과장을 데려오면 연봉 1,000만 원을 올려준다는 각서를 쓴다. 단서는 문 과장의 인스타그램에 달린 ‘#자전거길국토종주시작’이라는 해시태그(#)뿐. 중소기업 ‘여산정공’의 직원 네 명은 그를 쫓아 5박 6일 자전거길 국토 종주에 나선다. 장편소설 ‘왓 어 원더풀 월드’의 시작이다.
이 소설을 쓴 정진영 작가를 서울 광진구 뚝섬전망콤플렉스인증센터에서 만났다. 자전거로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을 해낸 그의 경험은 고스란히 소설로 옮겨졌다. “2016년 다니던 회사에서 싸우고 사표를 낸 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산 자전거 한 대 가지고 국토 종주를 떠났다. 이틀 동안 정말 별의별 고생을 다 했다”고 정 작가는 혀를 내둘렀다.
“감흥 없던 국토 종주, 자꾸만 생각나”
“아내에게 ‘국토 종주하고 올게’ 하고 나왔는데 하루 만에 돌아가는 것도 창피하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이화령 고개를 넘고 버티며 계속 달렸어요. 그렇게 일주일 걸려 부산에 도착했지만 별 감흥이 없더군요.”
첫 자전거길 국토 종주를 마친 정 작가의 소감은 “엄청난 감동의 폭풍이 몰아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했다”는 소설 속 주인공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 정 작가는 덧붙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자전거길에 오른 정 작가는 강을 따라 달리다가 물을 마시려고 갓길에 잠시 멈춰 섰을 때 “문득 바람 소리와 풀 냄새를 느끼며 ‘살아있다는 건 그 자체로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기분을 담고자 했다는 정 작가의 소설에는 경기 양평의 옥천냉면과 충주 수안보의 올갱이해장국, 의성 낙단보의 오리탕 등 자전거길 곳곳의 음식이 감초처럼 등장한다. 안주 에세이를 쓸 정도로 ‘음식에 진심’인 그는 “어차피 우리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음식을 빼놓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자전거길에서 이 모든 음식을 맛본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는 ‘물회’다. “국토 종주를 마치고 더운 날에 물회와 대선 소주를 시켜 먹어보니 고로쇠 물처럼 달더라”는 것.
“청년에게 부족한 ‘성취의 경험’ 주고 싶었다”
‘왓 어 원더풀 월드’의 인물들이 다니는 회사는 “신입만 한 바가지에 제대로 된 관리자 하나 없는” 곳이다. 정 작가는 “한국 중소기업 종사자가 노동자 10명 중 8명인데 투명 인간처럼 취급된다”며 "서울 명문대와 대기업에만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 속 주인공을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중소기업 직원으로 그려낸 이유다.
정 작가는 “청년세대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스스로 나서서 무언가를 이뤄본 성취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조금이라도 나서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이뤄본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자전거를 타고 국토 종주를 해 본 이후 ‘내가 아직은 이런 걸 할 수 있네. 그럼 다른 일이라고 못 하겠나’라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는 것.
“이 소설이 명작으로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 읽는 순간에 자전거길 여행 한번 가볼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족하다”는 정 작가는 말했다. "꼭 자전거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산에 한번 올라가 보거나 걷는 일, 이런 작은 성취가 쌓여 언젠가 본인에게 단단한 힘으로 발판이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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