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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금희 "신춘문예 시상식이 끝난 그 밤 이후 열다섯 해"

입력
2024.06.10 16: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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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人 한국일보] (3) 소설가 김금희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등단
“소설가로 산 15년, 항상 새로운 틈 향해”

편집자주

한국일보는 1954년 창간 연재소설 염상섭의 ‘미망인’을 시작으로 이듬해 문을 연 신춘문예, 한국일보 문학상 등으로 늘 문학계와 함께 걸어왔습니다. 역사와 더불어 많은 곡절을 겪고 격랑을 넘어온 한국문학의 기록자이자 동반자의 역할을 한 한국일보가 귀한 글로 신문을 빛내준 문우(文友)들과 창간 70주년의 기쁨을 나눕니다.

소설가 김금희.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창비 제공

소설가 김금희.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창비 제공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작가가 된 나는 요즘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놀란다. 15년 차 작가라고 말할 때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는 사실에 아득해지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시상식이 끝난 뒤 어느 어둑한 골목길, 그 당시 한국일보 문학 담당이었던 이왕구 기자(현 지역사회부장), 은사이신 고 김용성 선생님(소설가·인하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과 그 밖에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축하객들과 함께 맥줏집을 찾아다녔던 장면이 선명하고 뚜렷하다. 작가가 어떤 직업인지, 문학이 작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밤이었다.

선생님은 비싼 안주를 시키려는 오늘의 주인공인 제자를 말렸고, 1961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돼 그 상금으로 집을 사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재미있는 농담과 함께. 그때 내가 받은 상금으로는 집을 살 수 없었지만 나는 분명 인생이 바뀌는 지점에 서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시상식이 있던 낮이 아니라 밤에 집중돼 있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문학과 관련된 생각은 늘 차분한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2009년 1월 서울 중구 당시 한진해운센터 본관 강당에서 열린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소설 부문 김금희(왼쪽 세 번째)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류효진 기자

2009년 1월 서울 중구 당시 한진해운센터 본관 강당에서 열린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소설 부문 김금희(왼쪽 세 번째)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류효진 기자

최근 남극에서 한 달을 살고 돌아왔다. 떠나기 전 연재를 거의 마친 장편소설의 뒷부분 시놉시스를 출판사에 보내고 출발했다. 보험 가입도 어려운 험지이고 애초에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던 대륙이니 솔직히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각오했다. 그래도 이미 900매 이상 연재한 작품은 책으로 읽혔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게 도착한 남극은 사람과 사람의 힘으로 최대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환경이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이 매일매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언어로 번역해야 하는 그 공간에서 한없이 왜소한 존재인 것이 기뻤고 오직 자연 이외에는 어떤 질서도 힘을 가질 수 없는 남극 땅의 무국적성이 좋았다. 번호판이 달려 있지 않은 자동차를 몰고 남극도둑갈매기들 사이를 조심스레 빠져나가면서 “자동차 등록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겠네요. 국가가 없으니까” 하고 말할 때 나는 분명 어떤 틈을 보고 있었다. 그 틈에서는 원래 지구가 지녔던 꿈, 인류 역사에서 자본과 문명이 차지하는 시간의 양은 아주 미량에 불과하다는 엄연한 사실, 그러니 오늘의 우리는 지구의 어느 역사를 통과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자각이 느껴졌다.

요즘 내가 하는 작업은 눈으로 읽히는 소설이 아닌 귀로 듣는 것을 전제로 한 소설이다. 장면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데 익숙했던 나는 그것을 다른 감각, 후각, 촉각, 청각 같은 것으로 적절히 분배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왜 책은 꼭 활자로 먼저 출간돼야 할까요?" 하는, 배우 박정민씨의 물음으로 시작된 이 작업은 배우들의 목소리가 돼 소설의 새로운 형태로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것을 밀쳐두고 이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 건 쓰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6년의 소설가 김금희. 이천희 제공

2016년의 소설가 김금희. 이천희 제공


내면 서술 대신 대화와 인물 중심으로 사건을 진행시키고, 소리(비, 흔들리는 나뭇잎, 벌떼의 움직임)와 소음(전철역 승강장, 버스 정류장, 거리와 찻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사용하는 이 작업은 소설의 기원, 대화 속에서 전달됐던 이야기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니까 문자화되고 난 후 소설이 심화시켜 온 관념의 세계에 대해.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문학의 내면성에 대해.

아직도 문학판이 보수적이고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난 15년을 소설가로 살아본 나로서는 이 장의 사람들이 항상 새로운 틈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작가는 특별한 누군가가 하는, 대중에게서 아주 먼 직업이 아니며 책 역시 ‘읽는 것’으로만 존재하는 형태는 아니다. 읽으려는 사람과 쓰려는 사람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져 어떻게 보면 문학장은 더욱 웅성거리고 있다. 그런 웅성거림에 귀 기울이며 밤길을 걷는 기분이 나는 그리 나쁘지 않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어떠한 새로운 틈이 늘 생겨나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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