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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알록달록 '퓨전 한복'은 단속 대상?... "무명·삼베옷만 입으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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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알록달록 '퓨전 한복'은 단속 대상?... "무명·삼베옷만 입으란 말이냐"

입력
2024.06.07 09: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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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한복 군기 잡기' 발언 논란
"한복 형태 지켜야" vs "변화해야 발전"

인도네시아 관광객 디안(30)과 동료들이 5일 오후 한복을 입고 서울 경복궁을 둘러보고 있다. 전유진 기자

인도네시아 관광객 디안(30)과 동료들이 5일 오후 한복을 입고 서울 경복궁을 둘러보고 있다. 전유진 기자


"파란색, 빨간색, 보라색 한복이에요. 저희가 제일 좋아하는 색으로 맞췄어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처엔 형형색색 한복 자락이 여기저기서 휘날렸다.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화려한 금실이 수놓인 치마를 입고, 현대적 대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거대 고궁을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저고리와 치마를 정갈하게 갖춘 정통 한복도 있었고, 허리에 리본을 매달거나 머리에 베일을 얹어 다른 문화 요소를 한껏 반영한 '퓨전 한복'도 자주 보였다. 레게 머리를 하고 치마 아래 청바지를 입는 등, 취향에 맞게 한복을 걸치기만 한 외국인들도 많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디안(30)은 이슬람 전통 쓰개인 히잡 위에 조선 여성 머리장신구 떨잠을 얹은 뒤, 까만 선글라스를 쓴 그야말로 '다문화' 복장을 갖췄다. 동료들과 함께 서울을 찾았다는 그는 "한국 드라마를 볼 때마다 꼭 한복을 입어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착용하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K팝'과 'K드라마'의 영향으로 국내에 입국해 고궁 근처에서 한복 체험을 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부쩍 늘고 있다. 다만 이들의 출신 지역을 반영해 외국 요소를 가미한 퓨전 한복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이를 두고 한복이 국적불명의 옷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급기야 중국의 '한복 동북공정'을 우려한 당국이 한복의 개념을 다잡겠다고 나서면서, 불필요한 개입 논란으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찬성론: "중국 한복공정에 대처하라"

5일 오후 중국인 관광객 량제(33)가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이동하고 있다. 전유진 기자

5일 오후 중국인 관광객 량제(33)가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이동하고 있다. 전유진 기자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지난달 17일 최응천 국가유산청장(문화재청장)의 발언이다. 최 청장은 "경복궁을 찾는 많은 관광객이 한복을 입지만 국적 불명인 경우가 많다"며 "국가유산청이 앞장서 고유의 한복 개념을 바로잡을 때"라고 말했다. 한복을 입으면 고궁에 무료로 입장하는 혜택을 주고 있는데, 이 조건을 손볼 예정이란 뜻도 내비쳤다. 퓨전 한복은 혜택에서 제외한다는 뜻이 읽히는 발언이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해 4대궁과 종묘에 한복을 입고 입장한 인원은 154만6,349명에 달한다.

최 청장의 발언을 두고 문화 주체성 확립 차원에서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복궁에서 근무하는 A씨는 "일하다 보면 중국 황제의 모자를 쓴 관광객을 볼 때도 있다"며 고유의 한복 형태를 지켜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도 "한복(韓服)이 중국 한족의 전통 복식인 한푸(漢服)에서 유래됐다는 둥, 중국의 문화 공정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 전통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론: "복식은 시대에 맞게 변화"

손유나(22)씨는 5일 레이스가 달린 한복을 입고 친구와 함께 경복궁을 방문했다. 전유진 기자

손유나(22)씨는 5일 레이스가 달린 한복을 입고 친구와 함께 경복궁을 방문했다. 전유진 기자

반면 복식은 시대에 맞게 변화하기 마련이니 한복도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날 친구와 함께 밝은 하늘색 한복을 빌려 입고 경복궁을 방문한 손유나(22)씨는 "레이스가 달린 한복이 예쁜 것 같아 골랐다"며 "짧은 치마는 곤란할 수도 있지만 약간의 변화는 오히려 한복을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복궁을 산책하던 박모(58)씨도 "홍콩, 대만 등 외국도 자신의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며 "복식이 시대에 맞게 변하는 건 당연하다"고 이야기했다.

고궁 관리 주체 역시 입장 기준이 엄격해질 경우 적지 않은 갈등이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경복궁 등에선 전통 한복과 생활 한복 모두 한복으로 인정해 무료 입장 혜택을 제공한다. 다만 여미는 깃의 저고리와 하의(치마·바지)를 모두 갖춘 경우만 한복으로 인정한다는 게 원칙이다. 한 고궁 입장 관리인 B씨는 "지금도 무료 입장을 솔직히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많다"며 "전통 한복 여부로 관광객과 실랑이하다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복 대여 업체들은 정부의 '한복 군기 잡기'가 미칠 영향을 걱정한다. 경복궁 근처에서 15년 넘게 한복 사업을 했다는 기인숙(65)씨는 "예순이 넘은 고객들도 화려한 한복을 선호한다"며 "대부분 매장이 전통 한복도 함께 제공하고 있지만 손님들이 퓨전 한복을 선택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경복궁 근처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성모(52)씨 역시 "국적 불명 한복이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며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적절한 지원과 가이드라인 제공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답: "기준 제시하되 개인 선택 존중"

경복궁 근처에서 한복 대여 사업을 하는 기인숙(65)씨가 5일 매장에 있는 전통 한복들을 소개하고 있다. 전유진 기자

경복궁 근처에서 한복 대여 사업을 하는 기인숙(65)씨가 5일 매장에 있는 전통 한복들을 소개하고 있다. 전유진 기자

전문가들은 올바른 전통 한복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되, 개인의 선택을 존중할 때 한복 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경미 한복문화연구소 한땀 대표는 "깃과 고름이 있고 치마끈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기본적 원칙을 지키면서 패션 문화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은주 영산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다양한 형태로 바뀐 한복이 오히려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데 기여한다"며 "올바른 착장법을 제공하는 건 좋지만 국가가 나서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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