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날에 둘러본 일회용품 실태]
카페 내 플라스틱컵 제공 카페 곳곳에
종이컵·플라스틱 빨대만 규제 풀렸지만
정책 후퇴하자 규제 다 풀린 걸로 오해
"매장 내에서 쓸 다회용 컵이 있을까요?"
"아니오. 저희는 모두 플라스틱 컵으로 나가요."
3일 서울의 한 경찰서 1층 카페. '다회용컵을 쓸 수 있는지'를 묻자, 직원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만 쓸 수 있다는 답을 내놓았다. 카페 주방 안쪽을 보니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경찰관 등 카페 이용객들은 모두 매장 안에서 플라스틱 컵을 든 채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이 장면은 환경 규정 위반일까 아닐까. 누구나 볼 수 있는 카페 테이블에, 바로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매장 내 1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공지 주체는 환경부다.
여름철을 맞아 찬 음료 수요가 늘면서 상당수 카페가 외부 취식(테이크아웃)이 아닌 매장 내 주문에서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말 전 환경부가 '종이컵' 사용을 허용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사실상 일회용품 과태료 부과 조치를 하지 않은 이후, 카페 업주나 이용객 공히 '모든 일회용품 규제가 없어졌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업계와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일회용품 사용을 억제하려는 정부의 구상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무도 안 지키는 플라스틱 규제
경찰서 등 관공서에서도 일회용품 규제는 옛말이 됐다. 한국일보가 3일 서울 시내 경찰서 내 카페 다섯 곳을 둘러본 결과, 모두 매장 내 취식 여부도 묻지 않고 플라스틱 컵을 제공했다. 대부분 다회용 컵으로 교체가 가능했지만, 일부 카페는 다회용 컵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한 경찰서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경찰서 카페 매장 내에선 다회용 컵을 제공 중"이라 했지만, 본보가 직접 해당 카페에 가봤더니 플라스틱 컵을 제공하고 있었다.
일반 매장도 마찬가지다. 강남역 일대 카페 20곳을 둘러본 결과, 일부 개인 카페에서 여전히 매장 내에서 플라스틱 컵을 사용했다. 규제 준수에 민감한 프랜차이즈 매장에 비해, 규모가 작고 운영이 자유로운 개인 매장에서 노동력·비용 절감 등 이유로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는 것이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선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과 관련해 "요새 단속 안해서 그냥 쓴다"거나 "민원 들어오지 않는 한 사용하는 게 이득이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지난해 말부터 매장 내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가 다시 사용 가능해진 것이지,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여전히 300만원 이하 과태료 대상이다. 정부는 2022년 11월부터 식당과 카페 등에서 플라스틱 빨대나 종이컵을 사용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1년의 계도기간을 뒀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계도기간 만료를 앞두고 환경부가 기존 정책을 사실상 철회하며 매장 내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허용했다. 규제가 느슨해지고 단속이 없는 상태로 시간이 흐르자, 현장에선 플라스틱 컵도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혼동하거나 아예 규정을 무시하는 경우가 잇따르는 셈이다.
"명백한 환경 후퇴 정책"
5일 환경의 날을 맞이해, 일각에선 정부의 정책이 일회용품 사용을 부추겨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경부에 따르면, 일회용품 사용량 감축을 위해 환경부와 협약한 17개 프랜차이즈 카페·패스트푸드점에서 집계한 지난해 일회용컵 사용량은 9억3,989만여개였다. 이 가운데 종이컵은 약 3억8,220만개, 플라스틱 컵은 5억5,769만여개로 플라스틱 컵 사용량이 여전히 많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매장 내 종이컵 사용 규제가 해제되면서 같은 일회용 컵인 플라스틱 컵 규제도 현장에선 유명무실한 규제가 됐다"며 "종류에 관계없이 정부는 일회용품을 다시 규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회용품 규제 완화 조치 이후 규제가 다 없어졌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지방자치단체에 여러 번 안내공문을 보냈다"면서 "부족했다면 올해 상반기 중 자료를 검토해 좀 더 홍보할수 있는 방법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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