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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풍요롭게 만든 혁신과 도전 70년

입력
2024.06.05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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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실험·도전으로 언론계 선도
대한민국을 풍요롭게, 다수의 특종
조세형 김훈 정광모 등 인물 배출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77 에베레스트 한국원정대'의 고상돈 대장이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우뚝 섰다. 한국일보사와 대한산악연맹은 1973년부터 공동으로 등반계획을 세우고 준비해 1977년 한국인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반 기록을 세웠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77 에베레스트 한국원정대'의 고상돈 대장이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우뚝 섰다. 한국일보사와 대한산악연맹은 1973년부터 공동으로 등반계획을 세우고 준비해 1977년 한국인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반 기록을 세웠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70년은 새로운 실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때로 실패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도는 또 다른 도전의 밑바탕이 됐고 좁게는 한국 언론계의 발전, 크게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시민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70년간의 도전과 혁신

1954년 6월 9일, 첫 시작부터 혁신이었다. 한자 제호가 일색이던 당시, 한반도 모양의 흰 배경에 한글로 쓴 제호는 파격이었다. 2개 면에 불과했던 당시 신문에 두 개 사설을 실은 것도 획기적이었고, 시대상을 담은 1단 칼럼 ‘지평선’도 새로운 시도였다. 지평선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래픽=송정근기자

그래픽=송정근기자

언론계 최초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창간 직후 한국 언론 사상 최초로 견습기자 공채를 실시했으며 해외 특별 기고제 마련, 사설 가로쓰기, 점자신문 발행도 우리나라에선 한국일보 이전에 그 어떤 곳도 시행하지 않았다.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전국 모든 곳에 최신 소식을 동시인쇄하고, 휴일 없는 신문 발행에 나선 것도 한국일보였다. 뉴미디어 시대에도 변화와 혁신을 주도, 인공지능(AI) 뉴스 남용을 막는 조항(대량 크롤링)을 홈페이지 이용약관에 명시하는 한편, 생성형 AI 활용 준칙도 제정, 운영 중이다.

학술 행사, 문화 공연, 스포츠 지원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문무대왕릉, 반가사유석불 발견으로 이어진 신라 학술 조사사업과 ‘재발굴-한국독립운동사’ 등이 한국일보 후원이었으며, 에베레스트 등정·남극점 도보탐험 등 한국인의 극지 탐사도 함께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거북이마라톤 봉황대기쟁탈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부역전경주대회 메디힐ㆍ한국일보 챔피언십(KLPGA 투어) 등은 한국인의 건강한 삶을, 샤갈전 등 다수의 미술전시와 한국출판문화상 한국일보문학상 신춘문예 명인전(바둑) 등은 시민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높이고 문화 수요를 충족시킨 기획물들이었다.

1968년 10월 치러진 견습기자 선발 시험.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8년 10월 치러진 견습기자 선발 시험.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을 지키고 바꾼 특종들

체제를 지키고 권력형 비리를 파헤쳐 대한민국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인 굵직한 특종, 진한 휴머니즘을 담아 사회통합에 기여한 감동 사연도 한국일보를 통해 70년간 쉬지 않고 뉴스 이용자들에게 제공됐다.

전통적으로 사건ㆍ탐사보도에 강했던 한국일보는 통진당 해체로 이어진 이석기 녹취록 전문을 공개하는 특종(2013년)을 이뤄냈다. 김대중 정부의 진승현ㆍ이용호ㆍ최규선 게이트, 노무현 정부 초기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 호텔 향응 파문도 권력 감시 임무에 충실한 결과였다. 이에 앞서 유신체제의 종식으로 이어진 YH무역 생산직 여성근로자의 마포 신민당사 농성(1979년 8월)도 한국일보가 최초 보도했다.

18세 때 일본군 종군 위안부로 끌려간 뒤 55년 만에 캄보디아에서 소재가 확인된 훈 할머니의 기구한 삶, 범국민적 골수기증 운동을 이끌어 낸 한인 입양아 성덕 바우만씨 사연도 한국일보의 섬세한 특종 목록에 올라있다. 한국일보는 디지털 시대에도 방배동 모자의 비극(2020년) 폭주하는 유튜버(2022년) 무법지대 코인리스크(2023년) 등 새로운 사회 병리현상을 선도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특종에 강한 한국일보의 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기자협회에 따르면 1990년 9월부터 시작된 ‘이달의 기자상’ 가운데 2023년 말 현재 한국일보 기자에게 돌아간 경우가 94회에 달했다.

한국일보가 배출한 인재들

왼쪽부터 장명수, 정광모, 김훈

왼쪽부터 장명수, 정광모, 김훈

세상을 바꾼 특종, 선도적 기획과 공익사업이 잇따르면서 한국일보는 기자사관학교, 신문의 신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언론계는 물론 한국일보 경력을 바탕으로 타 분야에서도 대한민국에 기여한 많은 인재가 배출됐다.

언론계에서는 유신체제에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천관우(1925~1991) 전 논설위원을 꼽을 수 있다. 문화부장과 주필을 역임한 예용해(1929~1995)씨는 인간문화재라는 용어를 첫 사용하며 우리 전통 무형문화재 발굴에 크게 기여했다. 종합일간지 첫 여성 주필과 사장을 역임한 장명수(82)씨는 재직 시절 ‘장명수 칼럼’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국내 대표 여성 언론인이다. 정광모(1929~2013)씨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소비자 운동의 대모로 불리기도 했다.

정치권 인사로는 조세형(1931~2009) 전 민주당 상임고문, 오인환(85) 전 공보처 장관, 박실(1939~2022) 전 의원, 정진석(63)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한국일보와 인연을 맺었다. 문인으로는 신석초(1909~1975) 시인과 조경희(1918~2005) 수필가, 한운사(1923~2009) 작가, 이성부(1942~2012) 시인, 김훈(75) 소설가 등이 한국일보에서도 필력을 발휘했다.

강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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