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끝나는 날 14번째 거부권
민주당 22대 '의혹 종합 특검' 발의 등 총력
대통령실·여당, 원칙과 헌법 운운하며 대화 단절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4개 법안을 29일 거부했다. 이 같은 '무더기 거부'는 전례 없는 일이다. 이날 21대 국회가 끝나면서 법안은 자동폐기됐다.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취임 이후 14회로 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치다. 거대 야당은 의석수로 밀어붙이고, 소수 여당은 설득과 타협을 외면하고, 대통령은 국회 결정을 무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22대 국회를 앞두고 기대가 아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농어업회의소법, 한우산업지원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4개 법안과 함께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세월호참사피해구제 및 지원 특별법은 여야의 큰 이견이 없어 그대로 공표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를 최소화할 방침이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을 포함해 10차례로 늘어난 터라 거부권 카드를 또 꺼내기엔 정치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법안을 동시에 거부하는 건 우악스럽게 비칠 수도 있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각 법안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에 야당과 입장 차가 큰 전세사기특별법과 민주유공자법은 거부하더라도 농어업회의소법과 한우산업지원법은 절충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반대 입장으로 기울자 윤 대통령은 4개 법안을 거부하며 호응했다. "당의 호위무사가 되겠다(20일 윤 대통령)", "당과 대통령실은 공동운명체(28일 정진석 비서실장)"라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한덕수 총리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앞서 4개 법안이 왜 부당한지 조목조목 짚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정부로서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하는 법안,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부작용이 우려되는 법안들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거부권 건의 배경을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주택도시기금이 투입돼 무주택 서민이 피해 본다'(전세사기특별법), '유공자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민주유공자법), '국가 재정에 의존하는 관변화가 심화된다'(농어업회의소법), '여타 축산 농가와 형평성에 어긋난다'(한우산업지원법)고 덧붙였다.
당장 민주당은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 첫날부터 채 상병 특검법을 앞세워 대통령실과 여당을 다시 압박할 방침이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행정부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입법에 대해서는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맞섰다. '법안 강행처리→거부권→재의결·폐기'의 답답한 수순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 윤 대통령은 야당과 소통하며 민생 입법, 개혁 입법을 처리하는 정치적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조만간 22대 국회에 대한 메시지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다른 야당 대표와의 만남과 소통 타이밍은 아직 저울질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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