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지연 실태와 신속화 방안' 보고서
"법원장, 사법행정권 적극 행사해야"
업무 부담 객관적 측정 필요성도 주장
재판 지연의 주요 원인을 법원장 후보 추천제로만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법정책연구원은 부족한 법관 숫자와 법조일원화 시행 등 다른 요인들이 맞물려 재판 지연이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법관의 재판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법원장들은 적극적으로 사법행정권을 행사해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은 27일 이영창 선임연구위원(판사)의 '재판의 지연 실태와 신속화 방안-민·형사 사실심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재판 지연은 사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보고서는 재판 지연 원인 중 재판 절차 외 요소로 △급증한 변호사 숫자에 비해 미미한 법관 증원 △법조일원화(법조경력자 법관임용제도 실시) △법관인사 이원화와 고법부장 승진제도 폐지 등을 꼽았다. 재판 절차 내 지연 원인으로는 △빈번한 재판부 교체 △민사합의부 중심으로 목표 사건 처리 건수(선고 건수)의 하향 △피고인 측의 증거 적시제출주의 불준수 등을 제시했다. 이 판사는 "사법부나 재판부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신속·적정한 재판을 위한 제도들을 법원과 법관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재판 지연이) 발생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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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법부 안팎에서 재판 지연 원인으로 지목했던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해선 "불확실한 추측에 근거해 주된 원인을 추천제로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추천제 시행 시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기간과 민사합의부의 선고 건수 하향 관행이 널리 퍼진 기간과 겹치는 등 재판 지연과의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다는 취지다. 추천제가 적용되지 않던 법원에서도 민·형사 사건의 평균처리일수가 증가하는 것이 전반적 추세란 점도 근거였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법원 소속 판사들로부터 추천받아 법원장을 임명한 제도다. 이 제도 시행 후 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소극적으로 행사하는 등 인기투표로 전락했단 비판을 받았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올 2월 첫 인사에서 추천제를 실시하지 않았다.
다만, 이 판사는 법원장의 '적극적인 사법행정권 행사'가 재판 지연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원장이 재판 지연의 심각성을 구성원들에게 인식시키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해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법원조직법 등에 법원장의 사법행정권자로서의 책무와 재판의 독립 침해금지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타임 시트' 등을 이용해 사건·절차별로 법정 내외의 소요 시간을 실측해 법관 증원의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고, 공평한 업무 분배에 참고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그는 "재판 지연은 사법부 내외의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법관들의 '웰빙' 추구, 업무태만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재판의 적정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역량을 총동원해 소송의 신속화를 위한 개선·개혁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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