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 지시받고 그물 치러 저수지 입수
당시 군은 "아버지 보신 위해" 거짓말
사건 39년 만에 유족에 손해배상 인정
"부친이 폐결핵을 앓고 있어, 물고기로 보신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 이병이 알몸 상태로 저수지에 입수했다가 그만..."
1985년 전남 장성군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김모 이병이 저수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사건 경위를 군 관계자로부터 들은 유족들은 황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입대 한 달 된 아이가 아버지 걱정에 물고기를 잡으려고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는 설명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 유족의 의문이 풀리는 데 37년이 걸렸다. 2022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재조사 결과, 김 이병은 선임의 지시를 받아 '낚시 그물을 치러' 물에 들어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부대 막내였던 김 이병은 사고 전날까지 야간 근무를 하고도 퇴근하지 못한 채 선임 지시에 따랐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더욱이 군은 이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수사기록까지 허위로 꾸며, 김 이병의 개인적 일탈에 따른 사고사로 외부에 발표했다. 국방부는 위원회 조사 결과 넉 달 뒤, 김 이병의 사망을 '변사'에서 '순직'으로 뒤늦게 인정했다.
김 이병 유족은 국가에 책임을 묻기로 했다. 유족은 "(군이) 서둘러 사망자를 공동묘지에 매장하는 등 사건 경위에 관한 실체적 진실을 은폐하고 황급히 수사를 종결했다"면서 지난해 10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 소송 결과가 이번에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 김형철)는 22일 국가가 김 이병 유족에게 총 4억1,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김 이병)의 사망이 변사로 처리된 것은 군 수사기관 등 공무원들이 고의·과실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면서 "국가의 위법행위로 유족들의 명예나 법적 이해관계 등이 침해됐음이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군이 사망 사건에 대해 더욱 철저한 조사와 사후 처리를 했어야 했다고 질책하며, 유족의 고통을 인정했다. 이어 "김 이병의 부모는 순직 사실 자체를 수십 년간 알지 못하다가 사망했고, 형제 등 남은 유족은 37년이 지난 2022년에야 순직 사실을 알았다"면서 "유족들이 가족의 사망 이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리라는 점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김 이병이 사건 직후 순직군경으로 인정됐더라면 유족들이 받을 수 있었던 연금 등을 고려해 배상액을 책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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