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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가 개근거지래" 펑펑 운 아들... 외벌이 가장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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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가 개근거지래" 펑펑 운 아들... 외벌이 가장 한탄

입력
2024.05.24 14:50
수정
2024.05.24 18:3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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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학습 안 가는 가정 없을 줄이야"
"외벌이 빠듯… 땡처리 항공권 알아봐"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 서울 강동구 한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열린 지난해 3월 2일 한 초등학생이 아빠 손을 잡고 등교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 서울 강동구 한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열린 지난해 3월 2일 한 초등학생이 아빠 손을 잡고 등교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외벌이 A씨는 최근 초등학교 4학년 아들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A씨는 "아들이 친구들로부터 개근거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울면서 왔다"며 "아이가 그렇게 말해서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했더니 국내로 가면 창피하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회사원 B씨도 최근 초등 5학년인 아이가 반에서 놀림을 받을까 부랴부랴 여행을 준비했다. B씨는 "아이 반 친구들이 '너는 왜 맨날 등교하냐. 어디 놀러 안 가냐'고 했다더라"며 "그래서 체험학습 2일 내고 여행 다녀오고, 수영장도 데리고 다녀왔더니 그다음부터 그런 말을 안 들었다"고 했다.

가족 해외여행을 가지 않고 개근한 자녀가 학교에서 놀림을 당했다는 부모들의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다수 올라오고 있다. 학기 중 체험학습으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아이들을 조롱하는 '개근거지'라는 표현이 통용될 정도로 교내 혐오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린 A씨는 "학기 중 체험학습이 가능하다는 안내는 받았지만 안 가는 가정이 그렇게 드물지는 생각도 못 했다"고 한탄했다.

그는 "외벌이 실수령 350만 원. 집값 갚고 생활비에 보험 약간에 저축하면 남는 것도 없는데 아이가 그렇게 말하니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했다"며 "하지만 아이가 다른 친구들은 체험학습을 괌, 싱가포르, 하와이 등 외국으로 간다고 했다"고 푸념했다. A씨는 아내와 상의한 끝에,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아내와 아들만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맘카페에는 A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부모들의 사연이 잇따르고 있다. 한 학부모는 "요즘은 국내여행은 쳐주지도 않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더라. 과거 개근은 성실함의 척도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다"고 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우리 아이도 반에서 일본 안 간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면서 체험학습 얘기를 꺼냈다"며 "체험학습 안 쓰는 게 이상한 분위가 됐다"고 토로했다.

해당 글에 누리꾼들은 "애들 사이에서 '개거' 이런 표현은 너무 충격적이다" "진짜라면 너무 씁쓸한 현실" "초등학생들이 아빠 연봉 자랑하는 시대가 됐다" 등의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교육은 안 하고 체험학습이랍시고, 아이들 여행 다니는 거 부추기는 게 문제다" "아이들마저 서로 비교하는 무한경쟁 시대가 됐다" "요즘에는 돈 없으면 애 낳으면 안 된다는 걸 잘 보여주는 현상" 등의 비판적 의견도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극단적 경쟁에 따른 혐오와 차별이 초등학생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출생아 수가 줄면서 자녀들에 대한 투자가 확대돼 사교육은 물론 육아용품, 체험학습 등 모든 면에서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며 "자녀를 기죽지 않게 키우기 위한 '압박비용'이 증가하는데, 비용 부담을 야기하는 과도한 경쟁이 해소되지 않으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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