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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타 전면 폐지 공식화에... 과학계 "목소리 큰 사람만 예산 가져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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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타 전면 폐지 공식화에... 과학계 "목소리 큰 사람만 예산 가져갈라"

입력
2024.05.17 18:21
수정
2024.05.25 12:4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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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정전략회의서 폐지 결정
R&D 예산 삭감 '달래기' 시선도
"비효율만 도려내고 존치 필요"
정부 예산 편성권 비대해질 우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대규모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의 타당성을 사전 검증하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국가연구개발사업(R&D)에 한해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국가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R&D 사업이 조기에 착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지만,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허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 국가재정전략회의' 모두발언에서 "재정 운영은 민생을 더 세심하게 챙기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대비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면서 "성장의 토대인 R&D를 키우기 위해 예타를 폐지하고, 투자 규모도 대폭 확충하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도 "연구자들이 제때 연구에 돌입할 수 있도록 R&D 예타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예산 일괄 깎더니 예타도 일괄 폐지

예타는 총 사업비 규모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 지원이 3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도 이에 포함된다. 그간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를 반영하거나 국가균형발전 같은 정책 기조 차원에서 예타 제도를 개선하거나 면제한 적은 있지만, 특정 분야의 예타 폐지가 공식화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R&D 예타 폐지가 올해 R&D 예산 삭감 사태로 크게 반발한 과학기술계를 달래기 위한 '당근책'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경기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 본관에서 열린 '2024년 과학기술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왼쪽 구조물은 양자컴퓨터 모형이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경기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 본관에서 열린 '2024년 과학기술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왼쪽 구조물은 양자컴퓨터 모형이다. 서재훈 기자

그러나 과학기술계가 이 같은 제도 '급선회'를 마냥 반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R&D 예산 증액과 별개로 전문가들이 R&D 사업의 적정성을 평가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복직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예타 대상 한도를 올리는 것도 아니고 아예 없애겠다는 것인데, 그러면 옥석 가리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그간 예타에 탈락했던 사업들은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사업이 대부분이었고, 예타를 거치면서 사업을 (더 나은 방향으로) 재기획하도록 하는 순기능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진혁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지나치게 복잡한 의사결정 체계 등 예타의 문제점도 많지만, 그 기능과 역할을 수정해야지 전면적 폐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카르텔을 근절하겠다며 잘못된 부분만 도려내는 게 아니라 R&D 예산 전체를 흔들었던 정부가, R&D 예타도 문제점을 콕 집어 해결하려 하지 않고 선심 쓰듯 일괄 폐지를 결정한 걸 두고 R&D 체계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고민을 했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너도나도 나랏돈 쓰겠다 할 텐데...

정부는 R&D 예타가 폐지된다고 해도 모든 사업이 무분별하게 정부 지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R&D 예산의 지출 한도가 정해져 있는 만큼, 부처별로 주력하려는 R&D 분야에 예산을 우선 편성하게 하는 방식으로 재정 누수를 막고 예타의 공백을 메운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예산 편성권자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의사결정 과정에 전문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첨단 기술 분야 교수는 "지금까지의 예타도 공무원 조직의 논리와 방향으로 진행돼 전문성이 없었다"면서 "수천억 원 규모의 재정 투입을 결정하는 문제를 비전문가들이 정해도 되나 싶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 역시 "예타가 폐지되면 너도나도 나랏돈 쓰겠다며 R&D 사업을 기획할 것이고, 목소리 크고 정치적인 사람이 예산을 다 타 갈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나 학계에 영향력이 큰 연구자를 중심으로 또 다른 카르텔이 생길 거란 시각도 설득력이 있다.

정부는 내달 초 구체적인 R&D 예타 폐지 방안과 보완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현주 기자
전하연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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