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추대 몰아가는 친명계
당내 반대 성가신 것 아닌가
민주당 정체성 위기 겪을 일
8월 새 대표를 뽑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재명 대표의 연임 추대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비명 횡사’와 ‘친명 횡재’라는 유례없는 민주당의 공천 잡음에도 과반을 넘는 거대 의석을 확보했으니 이 대표에 필적할 이가 없기는 하다. 총선 승리 후광에 경쟁자가 될 만한 이들이 공천과정에 고배를 마신 탓이다. 친문계 핵심 인사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자신의 텃밭을 지키려다 좌절했고, 계파색이 옅고 ‘매버릭’ 이미지가 강한 박용진 전 의원 역시 수차례의 배제 룰이 적용된 끝에 공천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문제는 연임과 추대라는 형식이다. 전례가 없다 보니 자락을 까는 게 절체절명의 사안인 양 갖은 명분을 붙이는 게 친명계 일이다. “실익은 없고 정치적 부담만 지는 게 당대표 자리다” “안 하면 바지사장 논란이 일 것 아니냐” “대체 주자가 없다” 등 연임 논리를 설파한다. 박지원 당선자는 한술 더 떠 “당대표를 해서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게 순리”라고 했다. 여론도 달가워하지 않는 상황인데 너도나도 손을 들어 '연임 호위'를 자처하는 반면, 부당성을 지적하는 당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뉴시스가 의뢰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중도층, 무당층의 연임 찬성은 25%에 지나지 않고, 반대 여론(47%)이 두 배에 가깝다.
어색한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합의 추대 배경이다. 이 대표의 최측근인 박찬대 원내대표는 “합의 추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했다. 정청래 의원은 “본인은 말도 못 꺼내게 하면서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이라며 “정성을 다해 당대표 연임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반면에 직전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의원은 3일 유튜브에서 대표 연임 문제와 관련해 “이 대표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총선 전엔 "한 번 더 하면 주변 사람 다 잃는다"며 연임에 부정적이었던 이 대표인지라 ‘어쩔 수 없이 맡는다’는 형식을 취하고 싶겠지만 당내에 ‘이(李)비어천가’ 분위기까지 묻어나는 건 볼썽사납다.
민주당 역사에서 대표 연임이 이루어진 건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시절인 1997년 5월이다. 야권 분열로 15대 총선에서 80석도 안 되는 소수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 전당대회는 15대 대선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전당대회에선 정대철 당시 부총재와 김상현 당시 지도위 의장이 각각 대선 후보와 당 총재 자리를 놓고 DJ와 경합했다. 동교동계 중심의 1인 체제의 당 성격이었지만 그 또한 도전을 받고, 도전을 수용한 민주주의자였다. DJ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경합했던 정대철을 부총재로 지명했다.
민주당의 당헌당규상 당대표의 연임도, 추대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럼에도 '3김 시대'에나 통했을 연임이 27년 만에 부활하는 것도 마뜩잖은 일인데, 당대표 추대는 민주주의 성숙기에 있는 우리 정치에 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대선가도에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고, 대표를 위협하는 당내 반대 목소리는 성가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당대표 선거 판이 깔리면 당락에 상관없이 나설 인사가 줄을 이을 것이다. 가뜩이나 공천과정에서 보인 민주주의 퇴행 못지않게 총선 이후 이 대표의 절대권력화는 ‘정권 심판’과 ‘정권 교체’ 대의에 묻혀 곪아가는 민주당의 단면을 드러낸다. 22대 국회를 책임질 원내대표도 물밑 작업 끝에 이 대표 최측근을 단일 후보로 내세워 뽑더니, 국회의장마저 ‘명심’을 받는 6선의 추미애 당선자로 기우는 분위기다. 이 대표가 합의 추대로 연임에 성공한다면 세간의 뒷말처럼 ‘여의도 대통령’에 손색없는 라인업이 짜지겠으나, 민주정당으로서의 정체성 위기에 직면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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