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공개
승강기 정보 등 이동 편의 대폭 높여
공공 앱 적용 등 접근성 향상은 과제
"제가 와 본 적 없는 곳이라 조금 떨리네요."
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 휠체어를 타고 막 승강장에 내린 이모(24)씨의 낯빛엔 불안감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내 손에 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더니 거침없이 휠체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승 장소와 방법이 상세히 표시된 지도 덕분이었다. 이씨는 '좌측 5m 이동' '엘리베이터 탑승' 등 문구를 따라 위층으로 이동했다. '직진 55m'라는 설명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멈춰 서기도 했으나, 정면을 응시하자 곧 리프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지도에 의지해 복잡한 환승 통로를 이동한 지 15분, 목적지인 수인분당선 승강장을 알리는 노란색 표지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씨는 "초행길엔 보통 환승하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며 "환승 지도가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게 됐다"고 웃었다.
이씨가 활용한 지도는 협동조합 무의와 티머니 복지재단이 협업해 만든 '서울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다. 휠체어를 쓰는 장애인, 유아차 사용자 등 교통약자를 위해 서울 80개 역의 정보가 나와 있다. 일반 지도와 달리 리프트, 승강기 등을 탈 수 있는 위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휠체어 이용자의 속도에 맞춘 환승 소요 시간을 안내하는 등 이동 편의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7년 걸린 시민 200명 땀의 결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지하철역은 거대한 장벽이다.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탓이다. 또 시야가 낮아 표지판도 쉽게 눈에 띄지 않고, 승강기·리프트 위치가 역마다 달라 애를 먹기 일쑤다. 이씨는 "평소 이용하는 2호선 신당역의 경우 지상으로 올라와야 환승할 수 있다"면서 "하차 후 다시 카드를 찍고 승차하는 구조라 동선이 복잡하고 시간도, 돈도 많이 든다"고 토로했다.
환승 시간이 길어지는 건 당연지사. 무의가 지난달 공개한 자료를 보면, 서울지하철에서 평균 환승 시간이 3분 걸리는 비장애인과 달리, 휠체어 장애인은 11분에 달해 3배 넘게 차이가 났다. 특히 2·4호선이 만나는 사당역의 환승 시간은 각각 3분, 20분씩 소요돼 무려 7배나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
환승지도는 교통약자의 이런 고단함을 덜어주기 위한 산물이다. 과정은 지난했다. 7년 전인 2017년 대학생, 직장인 등 시민 200여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역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4명이 한 조를 이뤄 시간을 재고 안내문 위치를 점검하며 최적의 동선을 짰다. 같은 지하철역을 많게는 3번이나 찾아 지도 제작에 힘을 보탰다. 시민들의 정성이 어우러져 마침내 지난달 완성된 지도가 공개됐다.
노력의 결실은 빛을 발해 만족도도 높다. 밖을 나서기 전 미리 동선을 계획할 수 있고, 새 승강기 설치 등 역사 구조가 변해도 빠른 파악이 가능해졌다. 지체장애인 임슬기(33)씨는 "다양한 유형의 교통약자가 외출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도 "휠체어 장애인은 낯선 길에 대한 공포가 크다"면서 "승강기 위치만 사전에 알아도 안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강기 있으면 뭐 하나... 공공 협력 절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현재 공개된 환승지도는 무의 홈페이지에서만 볼 수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공공 또는 민간 애플리케이션(앱)에서도 지도가 구현될 수 있게 기술 숙련도를 높이는 것이 과제다. 홍 이사장은 "민간 앱 제작사 쪽에 지도 적용을 제안하면, 업데이트나 고객 관리 문제 등으로 난색을 표한다"며 "올해 안에 서울교통공사 등을 비롯한 여러 기관과 협업해 앱에 지도를 얹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울지하철의 승강기 설치 비율은 90%가 넘지만 장애인 등은 정확한 접근법을 몰라 이용을 포기할 때가 적지 않다"면서 "민간·공공영역이 힘을 합쳐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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