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나서
'봄날' '외출' '파리, 텍사스' 등 5편 선정
"연애 이야기는 희로애락 잘 드러나 선호"
멜로 영화 하면 떠오르는 감독이다.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봄날은 간다’(2001)는 개봉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종종 호명된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세계에 영향을 준 영화는 뭘까. 그가 영화 팬들과 함께 보고 싶은 작품은 또 무엇일까. 지난 1일 개막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답을 엿볼 수 있다. 허 감독이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나서 5편을 선정해 관객에게 선보이기 때문이다. 허 감독은 2일 오후 전북 전주시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선정한 영화들을 통해 영화 인생을 돌아봤다.
"유지태 예쁜 소년 같은 모습 함께 보고 싶다"
5편에는 허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와 ‘외출’(2005)이 포함됐다. 감독 본인의 영화 2편을 선정해야 한다는 영화제 측 요구에 따라서다. ‘봄날은 간다’는 출연 배우 유지태를 감안해 골랐다. 허 감독은 그는 “지난해 영국 런던한국영화제에서 ‘봄날은 간다’를 봤다”며 “유지태가 정말 예쁜 소년 같은 모습이라 지금 함께 보면 재미있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지태는 전주영화제 국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전주에 머물고 있다.
‘봄날은 간다’는 허 감독의 초기 대표작으로 종종 꼽힌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와 지방 방송국 연상 라디오 PD 은수(이영애)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다. 영화 속 은수가 상우에게 자고 가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대사 “라면 먹고 갈래”는 장난기 어린 유행어가 됐다. 허 감독은 “대사가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몰랐다”며 “한참 유행한 후 누군가 관련 영상을 보내줘서 깔깔거리면서 웃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저는 실생활에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말”이라고 웃으며 “고맙고 신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허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는 일상에서 가져온 이야기와 대사라 요즘 젊은 세대로 보는 듯하다”며 “젊은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연애 이야기를 좋아했던 건 “희로애락이라는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허 감독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옮긴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촬영을 마치고 가을 방송을 준비 중이다.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감독과 공동 연출했다.
"제 초기 영화에는 오즈 야스지로 세계관 담겨"
‘외출’은 허 감독이 누군가로부터 “감독님 영화 중 ‘외출’이 좋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 고른 영화다. 당시 욘사마로 불리며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배용준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디지털로 변환되지 않아 35㎜필름으로 상영된다.
5편에는 고 하길종(1941~1979)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과 독일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1984), 일본 오즈 야스지로(1903~1963) 감독의 ‘동경 이야기’(1953)가 포함됐다.
허 감독은 “초등학교 때 동네에서 혼자 처음으로 본 영화가 ‘바보들의 행진’”이라며 “1970년대 문화가 제 삶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에 선정했다”고 밝혔다. ‘파리, 텍사스’는 “군 제대 직후 친구와 야한 영화인 줄 알고 봤다가 깊은 감동을 받은 영화”다. 허 감독은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동경 이야기’는 “‘그 섬에 가고 싶다’(1993) 연출부 일이 끝난 후 프랑스 파리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본 작품”이다. 허 감독은 “영화가 이렇게 삶의 깊이까지 다룰 수 있구나 생각했다”며 “초창기 제 영화에는 오스의 세계관이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허 감독은 ‘봄날은 간다’를 제외한 4편을 2일부터 관객과 함께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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