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후견인 제도 비판에 '테러법' 적용
여성 억압 저항 사우디 여성 11년형 선고
앰네스티 "여성 인권 개혁 공허함 폭로"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20대 여성이 여성 억압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성의 자유로운 복장 허용 등을 촉구한 이 여성에게 사우디는 테러법 위반 혐의를 씌웠다. 인권 후진국에서 벗어나겠다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드라이브가 공염불에 그쳤다고 국제사회는 규탄하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와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사우디 법원은 지난 1월 마나헬 알 오타이비(29)란 여성에게 징역 11년형을 선고했다. 사우디에서 피트니스 강사로 일했던 오타이비는 과거 자신의 SNS에 "남성 후견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현재 사우디 여성은 남성 후견인(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결혼과 이혼 등이 가능하다. 그는 또 목부터 발등까지 온몸을 가리는 사우디 전통 의상 '아바야' 대신 여성이 자유로운 의상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를 위해 신체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영상 등을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사우디 당국은 2022년 11월 그를 체포했다. 오타이비가 '악의적이고 허위의 소문이나 뉴스 등을 온라인에 퍼뜨리는 행위'를 처벌하는 사우디 반(反)테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오타이비는 체포 직후 감금된 이후 소식이 끊겨 가족들은 5개월가량 그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했다. 다른 수감자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등 사우디 리야드의 한 교도소에 구금된 기간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도 한다. 11년 징역형도 선고된 지 4개월이 지난 최근에야 사우디 당국이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에게 해당 사실을 확인해주면서 밝혀졌다.
사우디는 2017년 무함마드 왕세자 집권 이후 그가 주도하는 '사우디 비전 2030'에 따라 여성을 옭아매던 금기를 하나둘 허무는 거처럼 보였다. 남성 동반자 없이 여성이 운전과 해외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한 조치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성 인권 불모지라는 악명은 계속됐다. 남성 후견인 제도는 여전히 건재하고, 당국은 여성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사우디 법원은 2022년 SNS에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자국 여성 살마 알 셰하브에 27년형을 선고했다.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는 초대형 도시 개발 프로젝트 '네옴시티'를 비판하는 글을 SNS에 올린 파티마 알 샤와르비란 여성은 지난해 30년형에 처해졌다.
앰네스티는 오타이비의 석방을 촉구하면서 "이번 판결로 사우디 당국은 최근 몇 년간 떠들썩했던 여성 인권 개혁의 공허함을 폭로했다"며 "평화적 반대 의견을 침묵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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