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혼자 걷기도 힘든 '산티아고 순례길', 당나귀와 완주...'한국판 돈키호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혼자 걷기도 힘든 '산티아고 순례길', 당나귀와 완주...'한국판 돈키호테'

입력
2024.05.05 14:38
수정
2024.05.06 16:04
15면
0 0

'마을버스' 세계일주 이어 '당나귀 순례'
현지 환대 속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한국어·영어판 출간...스페인판도 예정
"물아일체 감동...동화로 전하고파"

'동키 호택(Donkey HOTEK)'의 저자 임택 작가가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동키 호택(Donkey HOTEK)'의 저자 임택 작가가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우연만큼 멋진 계기는 없다.'

여행기 '동키 호택'을 시작하는 첫 문장이다. 마을버스를 개조해 떠난 세계일주로 주목받았던 임택(64) 여행작가가 이번엔 81일 동안 당나귀를 타고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 순례길을 걸은 이야기를 펴냈다. 우연히 시작한 그의 여행은 영리한 동물 '동키(donkey·당나귀)'가 등장하는 우화이자, '돈키호테'처럼 재미와 낭만을 밀고 나간 소설 같은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하다 50세가 넘어 여행작가가 된 그의 여행기는 언제나 그랬다. 상상으로 도달한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수집해 멋진 서사를 꿰어낸다.

"1년간 당나귀 공부...800㎞ 함께 걸었죠"

임 작가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지만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환갑이 넘은 아재가 당나귀와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독자들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꿈꾸는 돈키호테를 불러낼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여행의 시작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 동화를 쓰고 싶다는 작가의 열정에서 비롯됐다. 도서관에 앉아 다음 여행지를 고민하는데 여행 동화책이 한 권도 없다는 생각이 스쳤고, 불현듯 당나귀와 여행한 '돈키호테'가 떠올랐다고. 1년 동안 '동화 작가 아카데미까지 수료한 뒤에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지만 창작의 벽은 높았다. "'어르신' 작가가 어린 독자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직접 당나귀와 함께 여행을 한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임택 작가가 호택이를 처음으로 만난 순간. 그는 "비장한 마음으로 만난 호택이와는 하루도 안 돼 친해졌다"고 회상했다. 책이라는신화 제공

임택 작가가 호택이를 처음으로 만난 순간. 그는 "비장한 마음으로 만난 호택이와는 하루도 안 돼 친해졌다"고 회상했다. 책이라는신화 제공

그렇게 찾은 곳이 산티아고 성지순례길이었다. 제주 올레길을 비롯해 국내에선 당나귀와 여행이 불가능했던 터라 일말의 고민도 없이 산티아고로 목적지를 정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생판 모르는 동물과 함께하는 여행이니 특별한 공부가 필요할 수밖에요. 경기 여주의 당나귀 농장을 찾아 1년 넘게 당나귀의 습성을 익혔어요." 하지만 유럽의 농장주들은 선뜻 소중한 가축을 내어주지 않았다. 농장 수십 곳에 메일을 보낸 정성 끝에 피레네산맥의 한 당나귀 농장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곧바로 짐을 싸서 산티아고로 향한 그는 천신만고 끝에 만난 당나귀를 끌어안고 '호택'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당나귀 목줄을 놓자 친구가 되었다"

"짐꾼에 불과했던" 당나귀는 시간이 지날수록 반전을 거듭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여행길에서 당나귀의 먹을 것과 누울 곳을 챙기는 일이 고역이었을 법한데 임 작가에게 천군만마와도 바꿀 수 없는 든든한 존재였다고. "원래 당나귀는 스페인 순례길을 오가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대요. 멀리 한국에서 온 '돈키호테'와 당나귀 한 마리가 그 향수를 자극한 거죠. 지역 언론사들이 앞다퉈 여행을 소개하면서 스타 커플이 됐어요."

임택 작가와 그의 둘도 없는 동반자 당나귀 호택의 뒷모습. 여행 중반, 호택과 특별한 교감을 나눈 뒤 더 이상 고삐를 조이지 않았다. 책이라는신화 제공

임택 작가와 그의 둘도 없는 동반자 당나귀 호택의 뒷모습. 여행 중반, 호택과 특별한 교감을 나눈 뒤 더 이상 고삐를 조이지 않았다. 책이라는신화 제공


경험해본 적 없는 환대 속에 여정을 이어가는 사이 호택이와는 "목줄 없이도 발을 맞추는" 사이가 됐다. 임 작가는"처음엔 여행을 잘 마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늘 고삐를 잡고 끌며 힘으로 제압했다"며 "여행 중반을 지났을 때쯤 고삐를 놓쳐버렸는데 도망가지도 않고 나를 따라오는 것을 본 순간 진한 연민과 교감을 느꼈다"고 했다.

둘의 속도를 찾아 느긋하게 걷기 시작하면서 임 작가도 당나귀도 비로소 순례자가 됐다.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81일. 800㎞ 거리를 45일 안에 주파하겠단 계획이 무너지고 일정이 두 배나 지연됐지만 그의 말대로 "서로가 아니었으면 누리지 못했을 선물 같은 순간을 조금 더 누렸"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여행을 마친 두 순례자는 '쿨하게' 각자 있던 자리로 복귀했고, 이미 팬덤까지 생긴 둘의 여행기는 한국어판과 영어판으로 출판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호택이가 이어준 많은 인연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어판 출간을 준비 중이에요. 당나귀 순례자의 얘기가 길이길이 전해지겠죠. 당초 목표였던 동화책도 찬찬히 풀어내 보고 싶습니다."

손효숙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