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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후의 한국에선 평택이 서울을 뛰어넘는다?

입력
2024.04.26 13: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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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모래도시 속 인형들’

편집자주

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머지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SF 평론가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해 온 심완선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이경희 작가의 ‘모래도시 속 인형들’ 1권과 2권 표지. 안전가옥 제공

이경희 작가의 ‘모래도시 속 인형들’ 1권과 2권 표지. 안전가옥 제공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고 들었다. 모르는 맛은 상상하기 어렵다. 반면 맛있게 먹어본 종류의 음식은 떠올리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설령 새로운 조합의 음식이라도 아는 맛, 좋은 맛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맛없을 리 없다’는 기대가 든다.

이경희 작가의 ‘모래도시 속 인형들’은 말하자면 ‘아직 먹어보진 않았지만, 짐작이 가는’ 맛의 소설이다. SF 한 움큼에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뿌려 버무린 다음, 누아르를 톡 얹어 담아낸 느낌이었다. 여기에는 미래 기술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시의 풍경, 수상쩍은 범죄와 그걸 추적하는 주인공들, 인공지능·안드로이드·로봇이 인간 사이에 뒤섞이며 생기는 혼란, 그리고 ‘지옥이자 낙원인’ 세상다운 씁쓸함이 살짝 들어가 있다.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후의 한국이 배경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한 경기 평택을 정부는 ‘기술 규제 면제 특구’로 지정한다. 온갖 실험이 허용된 그곳은 서울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규모로 변한다. 최첨단 기술과 불법적인 행위가 어지럽게 얽혀 있기에 사람들은 그곳을 ‘샌드박스’라 부른다. 이는 상자에 모래를 담아 만드는 간이 놀이터를 의미한다. 여기서 파생된 ‘샌드박스 게임’은 놀이터에서처럼 플레이어가 각기 마음대로 갖고 노는 방식의 게임을 말한다.

소설 속 샌드박스 역시 비슷한 분위기가 풍긴다. 첨단 기술과 신종 범죄가 가득하다는 설정 덕분에, 이곳은 놀이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샌드박스가 된 평택의 어둠을 탐색하는 주인공으로, 평택지방검찰청의 첨단범죄수사부(첨수부) 소속 검사 ‘진강우’와 사립 탐정과 유사한 활동을 하는 민간조사사(국가 공인 탐정) ‘주혜리’가 등장한다.

샌드박스가 된 평택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진강우는 괴짜에 엉뚱한 소리를 하는 탐정 역할이다. 그리고 진강우의 지시를 받아 현장으로 뛰어드는 주혜리는 투덜대면서도 할 일은 해내는 행동파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자는 안락의자 탐정, 후자는 하드보일드 주인공 냄새가 난다. 소설 1권은 두 주인공이 옥신각신하는 유쾌한 분위기가 감도는 에피소드 연작이었는데, 2권은 도시에서 들썩이는 거대한 변화의 징조를 더듬는 장편소설에 가깝다. 두 권의 출발점이 다소 다른 탓이다. 단편으로 시작한 첫 책과 달리, 두 번째 책은 3부작이라는 그림이 확정된 다음에 나왔다. 그리고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은 중간관리자 역할을 한다. 큰 이야기의 몸통이 되어 내용을 견인하면서도 최종편의 몫을 남겨두는 자리다. 이에 맞게 2권은 샌드박스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의 윤곽을 묘사하고 클라이맥스를 암시하는 일을 맡았다.

작중의 샌드박스를 지켜보며 요리 교실에 취미로 등록한 기분을 느꼈다. 요리 교실은 필요한 재료가 미리 손질된 채로 시작한다. 수강생은 준비된 프로그램에 맞춰 요리를 시작한다. 무엇이 만들어질지는 대강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뻔히 아는 요리는 아니다. 먹어보고 싶지만 내 손으로 만들진 못하는 맛을 기대하며 수업에 뛰어든다. 그리고 좋은 요리 교실은 기대보다 나은 결과물을 제공한다. 게다가 작중에 나오는 디지털 아트는, 앨프리드 베스터의 SF 소설 ‘타이거! 타이거!’와 이상의 시 ‘삼차각설계도-선에 관한 각서1’의 조합물이다. 예상치 못한 반가운 만남이었다.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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