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등 세계적 주목받는 중국 SF
과학 발전 발판 삼으려는 정부 지원
휴고상·애국주의 세대 검열 논란도
“중국 공상과학물(SF)이 미국 SF와는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인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10년 전에 비하면 상황이 사뭇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중국 작가 류츠신의 SF소설 ‘삼체’ 첫 장에 실린, 잡지 SF세계 편집장의 서문에는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중국 SF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중국은 SF계의 노벨문학상 격인 휴고상의 아시아 최초 수상 및 2년 연속 수상(2015, 2016년)과 2023년 세계SF대회(월드콘) 개최로 뚜렷한 존재감을 남겼다.
한국에서도 중국 SF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화로 주목을 받은 ‘삼체’가 대표적이다. '삼체'는 4월 둘째 주 기준 교보문고와 예스24 소설 부문 1위를 기록했다. 또 지난달 출판사 아작과 에디토리얼은 샤쟈의 소설집 ‘베스트 오브 샤쟈’와 천추판의 장편소설 ‘웨이스트 타이드’를 각각 내놨다. 샤쟈와 천추판은 중국 바링허우(1980년대생) 세대의 대표적인 SF 작가다. ‘삼체’가 2013년과 2014년 한국과 미국에 정식 소개된 첫 중국 SF였고, 이 작품을 두고 “중국에도 SF가 있나”라는 질문이 쏟아졌던 점에 비춰보면 상전벽해다.
중국 정부가 이끈 ‘세계로 향하는 SF’
중국 SF의 달라진 국제적 위상의 배경에는 ‘시진핑 정부'가 있다. 중국에서 SF는 한때 사이비 과학이라며 금기시되다가 1980년대를 거쳐 본격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미국, 일본의 작품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류츠신의 2015년 휴고상 수상을 계기로 중국 당국은 본격적으로 ‘세계로 향하는 중국 SF’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심완선 SF평론가는 “중국은 정부에서 SF 전문 번역가를 키우는 등 대대적인 육성 사업에 나서고 있다”며 “최근 몇 년 새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SF를 키우는 속내는 콘텐츠의 수익성뿐 아니라 ‘과학 굴기’(과학기술 부흥 정책)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 국무원은 2020년 '국민 과학 소질 행동계획 강령'에서 SF 콘텐츠 산업을 성장시키겠다면서 “과학 기술 문화 발전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해 청두에서 열린 월드콘 개최 소식을 전하며 “SF소설을 일찍 접하면 청년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과 상상력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애국주의 세대 등 검열은 변수
정부가 주도한 만큼 이면의 어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월드콘에서 불거진 휴고상 검열 논란이 대표적이다. 휴고상 심사위원단의 이메일이 유출되면서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작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이 드러났다. 또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속 문화혁명 장면을 보고 반발하는 등 중화주의 시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중국의 젊은 애국주의 세대도 변수다. 이들의 자발적인 검열은 결과적으로 작품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다만 최근 젊은 작가들 사이에선 ‘SF는 민족과학정신 육성의 요람’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현대 중국의 갈등을 그리는 작품도 등장하고 있다. 샤쟈 작가가 대표적이다. 심 평론가는 “정부 공인 출판사 중심으로 책이 출간되기에 중국에선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내기 어렵다”면서도 “SF는 비현실의 공간을 그리는 만큼 (검열이) 완화되는 측면이 있다는 기대가 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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