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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양심'을 건드린다면?"... 그리스 파르테논 조각은 '합체' 가능할까

입력
2024.05.04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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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별의 별의별 유럽: 시즌 2]
⑤ 그리스 VS. 영국 '파르테논 분쟁'

편집자주

우리가 알아야 할, 알아두면 도움이 될, 알수록 재미있는 유럽의 이야기를 신은별 유럽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리시 수낵(왼쪽 사진) 영국 총리와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 두 정상은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회담할 예정이었으나 '파르테논 조각' 갈등이 불거지며 만나지 않았다. 런던·아테네=AP AFP 연합뉴스

리시 수낵(왼쪽 사진) 영국 총리와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 두 정상은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회담할 예정이었으나 '파르테논 조각' 갈등이 불거지며 만나지 않았다. 런던·아테네=AP AFP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8일 오전 11시(현지 시간) 영국 런던. 예정대로라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 간 정상회담이 열렸을 시각이었다. 그런데 일정은 불발됐다. 전날 저녁 영국이 돌연 회담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초대형 참사이자 외교적 결례였다.

갈등의 발단은 양국이 절반씩 나눠 갖고 있는 '파르테논 조각'이었다. 조각은 원래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높은 언덕에 위치한 도시)에 세워진 파르테논신전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초 영국으로 건너간 뒤 그리스가 줄곧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논쟁적 유물'이다. '미초타키스 총리가 파르테논 조각 이야기를 안 꺼낸다고 약속해 놓고 꺼낼 것처럼 굴었다'는 게 수낵 총리의 회담 취소 사유였고, 미초타키스 총리도 "회담 취소는 짜증 난다"고 받아쳤다.

'파르테논 조각을 돌려줘야 한다'는 국제 여론이 확산되는데도 꿈쩍하지 않는 영국을 설득할 방법이 정녕 그리스에 없는 것일까. 양국 간 감정의 골 해소는 물론 전 세계 문화재 반환 논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이 사안을 그리스와 영국이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한국일보가 글로벌 전문가 인터뷰를 토대로 살펴봤다.

영국과 그리스의 '파르테논 조각' 분쟁 관련, 한국일보 인터뷰에 참여한 에반겔로스 키리아키디스(왼쪽 사진부터) 유산관리기구 이사, 레일라 아민돌레 변호사. 오른쪽은 인터뷰에 참여한 독일 비정부기구 잃어버린예술재단 전경. 본인 및 기관 제공

영국과 그리스의 '파르테논 조각' 분쟁 관련, 한국일보 인터뷰에 참여한 에반겔로스 키리아키디스(왼쪽 사진부터) 유산관리기구 이사, 레일라 아민돌레 변호사. 오른쪽은 인터뷰에 참여한 독일 비정부기구 잃어버린예술재단 전경. 본인 및 기관 제공

그리스 문화재 반환 운동 및 교육을 주도하는 유산관리기구의 에반겔로스 키리아키디스 이사, 미국에서 활동하는 레일라 아민돌레 문화재 및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 나치 독일의 약탈 문화재 조사 및 반환 등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 비정부기구 '잃어버린예술재단'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합법적 취득" VS. "절도"… 창과 방패의 싸움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조각을 박물관 관람객들이 보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조각을 박물관 관람객들이 보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파르테논신전의 윗부분에 있는 160m 길이의 '프리즈(frieze·건물 윗부분을 장식하는 띠 모양의 그림 또는 조각)'는 파르테논 조각이 원래 위치했던 곳이다. 당대 최고 조각가 페이디아스에 의해 탄생한 조각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과 에피소드를 묘사하고 있다.

신전을 수놓았던 조각 절반이 현재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에 놓이게 된 사연은 워낙 유명하다. '19세기 초 당시 오스만 제국 치하 그리스에 영국 특별대사로 파견된 외교관 토머스 브루스(7대 엘긴 백작·이하 엘긴)가 이를 떼어냈고, 영국 정부에 팔았다'는 것. 그러나 이 과정이 합법이었냐를 두고는 양쪽 의견이 확연히 갈린다.

영국의 주장은 '정당한 취득' 쪽이다. 영국박물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설명은 이렇다. "엘긴은 무너진 폐허와 건물(파르테논신전)에 남아 있는 조각품 약 절반을 오스만 당국 허가하에 1801년부터 제거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엘긴은 조각을 영국으로 운반하던 중 파산했다. 1816년 영국 의회는 조각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조각은 1817년부터 영국박물관에서 항상 무료로 전시돼 왔다."

영국박물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파르테논신전에 있던 조각이 영국으로 이동하게 된 과정이 합법적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영국박물관 캡처

영국박물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파르테논신전에 있던 조각이 영국으로 이동하게 된 과정이 합법적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영국박물관 캡처

그리스는 영국이 '절도' 또는 '절도에 준하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본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파르테논신전 조각을 제거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는 엘긴 주장을 입증할 만한 문서는 사라졌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근거를 들어서다. 아민돌레 변호사는 "파르테논 조각 해체, 운송 등에서 필요한 허가를 받았다고 볼 만한 증거는 거의 없다"며 "설사 '불법'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매우 의심스러운 과정'으로 유물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영국은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합법이냐' 아닌 '도덕적이냐'에 집중해야"

1983년 그리스가 파르테논 조각 반환을 처음으로 공식 요청한 시점부터만 따져도 논쟁은 4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이는 취득 과정의 적법성을 따져 온 그리스의 접근 방식이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유물 반환 논의에 주로 활용되는 국제법인 유네스코의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방지 수단에 관한 협약'(1970년 제정)도 소급 적용되지 않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에 파르테논 조각을 그리스로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많은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제는 논의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2022년 11월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뒤로 보름달이 떠 있다. 아테네=AP 연합뉴스

2022년 11월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뒤로 보름달이 떠 있다. 아테네=AP 연합뉴스

고고학자 겸 유산관리기구의 창립자이기도 한 키리아키디스 이사는 "'법적 논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도덕적 논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불법적으로 취득했다'는 점을 따져 묻는 것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마땅히 돌려줘야 할 물건을 돌려주지 않는 태도를 부각해 영국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망신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파르테논 조각은 그 자체로 그리스라는 국가를 상징한다. '그리스의 국가적 상징을 반쪽짜리로 두는 게 맞느냐'는 여론을 형성해 영국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과거의 영국'이 어떤 잘못을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영국'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점을 부각해야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남아프리카대 정치학 교수인 에베리스토 베니에라도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것'에 불과한 유물이 누군가에게는 '조상과의 연결고리를 잃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미국 ABC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리스 정부도 최근 비슷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수낵 총리가 회담 취소라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도록 해 파르테논 조각 갈등을 최대한으로 부각하게 만든 미초타키스 총리의 발언은 이렇다. "모나리자를 반으로 잘라 절반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나머지 절반은 영국박물관에 소장한다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관객들이 이 그림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겠습니까?" (지난해 11월 26일 영국 BBC방송 인터뷰) 영국의 태도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으로 수식되는 모나리자에 빗대 직격한 것이었다.

논의의 주체를 양자(영국·그리스)에서 다자로 확대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리스 출신 유럽의회 의원인 알렉시스 조르굴리스는 '유럽연합(EU)의 참여를 독려하자'고 그리스 그릭리포터 인터뷰 등을 통해 말했다. "파르테논 조각이 세계문화유산이자 민주주의의 강력한 상징이라는 점을 더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호소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고대의 기념물이 원래의 형태로 복원되는 과정에 다양한 당사자가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잃어버린예술재단 역시 파르테논 조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삼갔지만 "EU가 약탈된 유물을 소유자에게 돌려주기 위해 출처 조사 및 자금 지원을 하는 데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준다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EU 탈퇴 이후로도 EU와 긴밀히 교류하고 있다.

지난달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신전 앞에 2024 파리 하계올림픽 성화가 타오르고 있다. 아테네=AP 연합뉴스

지난달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신전 앞에 2024 파리 하계올림픽 성화가 타오르고 있다. 아테네=AP 연합뉴스

'파르테논 조각을 돌려주는 게 영국에 유리하다'는 점을 설득하자는 목소리도 그리스 내부에서 적지 않게 나온다. 영국이 약탈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파르테논 조각이라는 가장 논쟁적인 조각을 돌려줌으로써 이를 어느 정도 만회하라'는 식으로 설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다분히 그리스적인 시각이다.

'주변국 반성'이 영국에 영향 줄까

국제사회 여론이 점점 그리스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데 기대를 거는 분위기도 있다. '제국주의 및 식민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특정 유물은 지역적·역사적 맥락에 놓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는 점은 분명 그리스에 유리하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해 7월 영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파르테논 조각을 그리스로 반환해야 한다'는 응답이 64%였다.

지난 2월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마블스를 무대로 런던 패션위크 패션쇼가 열리고 있다. 리나 멘도니 그리스 문화부 장관은 이에 대해 "영국박물관이 걸작을 존중하지 않고 있으며, 기념비적 건축물이 전달하는 보편적 가치를 모욕하고 있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런던=AFP 연합뉴스

지난 2월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마블스를 무대로 런던 패션위크 패션쇼가 열리고 있다. 리나 멘도니 그리스 문화부 장관은 이에 대해 "영국박물관이 걸작을 존중하지 않고 있으며, 기념비적 건축물이 전달하는 보편적 가치를 모욕하고 있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런던=AFP 연합뉴스

주변국에서 약탈 유물 반환 흐름이 커지고 있는 점이 영국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하며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부터 약속한 것은 지금까지도 파격으로 거론된다. 프랑스는 이후 베냉 세네갈 등에 유물을 대거 돌려줬다. 네덜란드도 최근 몇 년간 옛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에 유물을 대거 반환하며 "협박·약탈을 통해 획득했다"고 '확실한 반성'을 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 1월 아프리카 유물 반환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연 36만 유로(약 5억3,451만 원)의 공동기금을 조성하겠다고도 발표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영국이 파르테논 조각을 순순히 포기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지난 2월 마크 존스 영국박물관 임시관장이 '그리스의 다른 좋은 유물과 교환 전시를 하는 방안에 열려 있다'고 말한 것도 영국의 입장이 변화했다기보다는 영국을 향한 파르테논 조각 반환 압박을 회피하는 동시에 파르테논 조각이 영국의 소유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의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06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지난해 바티칸박물관 등이 파르테논 조각 일부를 그리스에 되돌려줬을 때도 영국은 꿈쩍하지 않았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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