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44회 장애인의 날]
지적·지체장애인 잇단 화재 사망 사고
정보 접근성 떨어지는 등 허점 수두룩
"장애 전담 재난 조직체계 만들 필요"
"재난 대응에서 장애인은 지워진 존재예요."
제22대 총선 사전투표가 한창이던 6일 오후 2시 38분,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지적장애인 A(14)군이 숨졌다. 1층이었는데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A군은 이불에 몸을 꽁꽁 싸맨 채 발견됐다. 대피한 누나와 잠시 외출했던 엄마가 그를 끌어내려 했지만 90㎏이 넘는 거구의 남성을 구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세월호 참사 후 재난 대피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계속됐지만, 대형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장애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재난정보 전달이 일방적인 데다, 대응책도 제각각이라 화재, 폭우 등 재난 앞에서도 장애인은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다.
화재로 숨진 장애인, 非장애인 9배
예방과 대비 부족으로 숨지는 장애인 재난 사건은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전남 나주에서 20대 지적장애인이, 올해 2월엔 전남 담양에서 40대 중증장애인이 불을 피하지 못해 숨졌다. 역시 가족이 잠시 외출한 사이에 발생한 비극이었다. 2022년 8월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폭우 침수 피해로 사망한 일가족도 발달장애인이었다.
실제 2021년 소방청 조사 결과, 장애인 화재 사망자는 10만 명당 3.6명으로 비장애인(0.4명)에 비해 무려 9배나 많다. 사정이 이러니 장애인들은 가장 편한 공간이어야 할 집에서조차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 지체장애인 김모(41)씨는 "10층에 사는데 불이 날까 무서워 안마기도, 가스레인지도 못 쓸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지체장애인 지모(45)씨도 "아파트 건물에서 사이렌이 울려 패닉이 온 적이 있다"며 "화재가 발생해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지 않는 이상 직접 기어서 탈출하거나 그저 구조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한숨 쉬었다.
장애인들의 피해가 큰 건 재난 시스템의 허점이 적지 않은 탓이다. 우선 현행 재난정보 고지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정보 습득이 늦고, 변수에도 즉각 대응이 힘들 수밖에 없다. 국민재난안전포털, 안전디딤돌 등 재난정보를 알리는 온라인 홈페이지에서도 대피 장소에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장애 특성을 고려한 지원이 있는지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방 정보 전달... "맞춤식 대책 세워야"
별도의 '맞춤식 대응' 체계가 없는 것도 맹점으로 지목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는 장애인을 안전취약계층으로 규정하고, 안전용품 제공 및 시설 개선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장애인의 구체적 대처 방법 및 장애인 현황 파악을 위한 법적 근거는 미비하다. 장애인에게 초점을 맞춘 정기 재난 대피 교육도 의무화돼 있지 않다.
지원을 하더라도 홍보 부족 등으로 장애인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소방청은 사전 등록을 통해 구급대원이 위급상황 시 장애 등 특성을 미리 알고 출동하는 '119 안심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2020년 기준 가입률은 1.0%에 불과하다. 장애인의 이용률은 0.6%로 더 떨어진다.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를 장애인 다수가 모르기 때문이다. 장종인 인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비슷한 신고시스템인 보건복지부 응급안전안심서비스도 지역마다 신청 방법이 다르고, 신규 등록하려면 기존 이용자가 사망하거나 타 지역으로 이주해 빈 자리가 생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난전문가들은 장애인을 노인, 어린이 등과 함께 묶은 안전취약계층 대책부터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동규 동아대 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정부가 복지 프레임에 갇혀 장애인 안전까지 고려하기 쉽지 않고 개별 대책도 취약하다"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반복 대피 교육을 하고, 정보 제공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등 맞춤형 대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장 사무국장은 "재난이 닥쳤을 때 장애인 대책을 총괄하는 전담 조직을 정부 안에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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