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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불러낸 '전두환의 경제수석 김재익'...그의 또 다른 얼굴은?

입력
2024.04.20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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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홍제환 '경제관료의 시대'
이승만~전두환 정부 시기 경제성장 이끈
고위 경제관료 13명의 생애와 정책 조명

지난해 11월 1일 서울 마포구 신촌의 한 카페에서 열린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경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김재익 경제수석'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냈다. 서재훈 기자

지난해 11월 1일 서울 마포구 신촌의 한 카페에서 열린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경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김재익 경제수석'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냈다. 서재훈 기자

"여러 말할 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1980년 청와대 경제수석 자리를 제안받은 김재익(1938~1983). 물가를 잡으려면 "인기 없는 정책을 할 수밖에 없고 저항도 만만찮을 것"이라 하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했다는 답변이다. 이후 김재익은 과감한 안정화 정책으로 1981년 21.6%에 이르던 물가 상승률을 1982년 7.1%로 낮췄고 1980년대 말까지 2~3%대로 유지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1980년대에 대해 적지 않은 국민이 "그래도 그땐 성실하게 일만 하면 누구나 집 사고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고 기억하는 이유다. 지난 대선 때 혹독한 비판에도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가 전두환 정권 시절을 재평가하고, 대통령이 된 뒤 일반시민과 함께 하는 비상경제회의 자리에서 김재익이란 이름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이기도 하다.

1978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시절 외국 기업들 앞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설명하던 김재익. 관료들 사이에서 '굴러 들어온 돌' 처지였던 데다, 경제안정화론이 먹혀들지 않으면서 이즈음의 김재익은 공무원 생활을 접으려 했다. 너머북스 제공

1978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시절 외국 기업들 앞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설명하던 김재익. 관료들 사이에서 '굴러 들어온 돌' 처지였던 데다, 경제안정화론이 먹혀들지 않으면서 이즈음의 김재익은 공무원 생활을 접으려 했다. 너머북스 제공


심각한 불평등과 자산 격차 때문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같은 말이 돌아다니는 이 시대와 대비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재 정권하에서 인기 없는 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한, 그 결과 물가안정으로 보통 사람들도 웬만큼은 먹고살게 한, 하지만 아웅산묘소 폭발사고로 안타깝게 숨지고 말았다는 비극적 스토리까지 갖췄으니 더할 나위 없다.


13인의 경제관료로 본 한국경제사

경제사학자 홍제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 쓴 '경제 관료의 시대'는 20세기 후반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13명의 경제 관료를 중심으로 살펴본 책이다. 이승만 정부 시절 인플레이션과 사투를 벌여 '백재정'으로 불렸던 백두진(1908~1993)에서 시작해 한국일보 사주로 경제부총리를 지낸 장기영(1916~1977)을 거쳐 박정희 정권 최장수(9년) 비서실장 김정렴(1924~2020)과 중화학공업화의 일등공신으로 '국보'라고까지 불렸던 오원철(1928~2019)은 물론,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경제 연착륙을 시도했던 신현확(1920~2007) 부총리와 김재익에 이르기까지다.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김재익이다. 지금이 '고물가 민생고' 시대이기도 해서다.

'경제 관료의 시대'를 써낸 홍제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너머북스 제공

'경제 관료의 시대'를 써낸 홍제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너머북스 제공


김재익은 자유시장을 선호했다. 그런데 좀 특이하다. 저자에 따르면 김재익은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를 좋아했다 한다. 1970년대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시절 미제스가 쓴 책 '자본주의 정신과 반자본주의 심리'를 주변 관료, 정치인, 언론인들에게 열심히 나눠줄 정도였다 한다.

재미있는 점은 미제스는 밀턴 프리드먼조차 비판한 좀 더 완강한 자유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프리드먼은 정부의 재정중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통화정책을 내놨지만, 좀 더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미제스가 보기엔 통화정책 또한 자유시장을 해치는 시장개입이긴 매한가지였다는 것이다. 누가 누가 더 진짜 자유시장주의자일까. 참으로 끝없는 게임이다.

완강한 시장주의자 김재익의 '관치금융'

김재익도 마찬가지다. 물가와의 전쟁에 돌입한 그가 내놓은 첫 조치 중 하나는 "임금 인상률이 높은 기업에 은행 융자를 제한토록 한 것"이었다. 월급 많이 올려주면 자금줄을 죈 것이다. 쉽게 말해 관치금융이었다. 그 덕에 "1981년 10~15% 수준이던 대기업의 임금 인상률이 그 이듬해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오늘날 맹활약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과 성과급에 목마른 MZ직장인들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경제 관료의 시대·홍제환 지음·너머북스 발행·352쪽·2만6,500원

경제 관료의 시대·홍제환 지음·너머북스 발행·352쪽·2만6,500원


김재익은 동시에 공정거래법을 제정하고 수입자유화를 추진했다. 경기가 어렵고 쿠데타 정권이고 하니 당시 기업들은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기업들의 기를 살려주는 경기부양책을 기대했다. 하지만 김재익은 소수 기업의 독과점 구조를 제재하고 해외 수입을 늘려 국내 기업들을 더 격한 경쟁 상황 속에 몰아넣어야 물가가 더 떨어진다고 봤다. 시장원리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때에 따라 반대말일 수도 있다.

'김재익' 그리고 '김재익을 용인한 전두환'을 긍정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 시대에서 빌려올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지금 시대에 그때와 같은 '40, 50대 스타 경제 관료'가 탄생할 수 있을까. 저자조차 슬쩍 고개를 가로젓는다. 역사적 교훈은 그리 쉽지 않다.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은 우연의 산물

한국형 계획경제의 출발점이 된 1959년 '경제개발 3개년 계획', 중화학공업화의 마스터플랜이었던 1972년 '공업구조개편론', 과열된 경제를 가라앉히기 위한 1979년 '4·17 경제 안정화 종합시책' 등 한국 경제의 변곡점이 됐던 사건들이 잘 정리돼 있다.

1960년 방한한 미국 금융 관계자들을 맞이하는 송인상(오른쪽). 이승만 정권 말기 미국의 지원하에 장기경제개발계획을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너머북스 제공

1960년 방한한 미국 금융 관계자들을 맞이하는 송인상(오른쪽). 이승만 정권 말기 미국의 지원하에 장기경제개발계획을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너머북스 제공


박정희 정부 시절 수출주도형 공업화로의 전환을 두고 '뭔가 특별한 계획이나 전략이 있었다기보다 그저 1963년 한 해 공산품 수출이 잘된 덕분'이라 설명하는 대목에선 웃음이 나다가도, 달러 한 장이 아쉬웠던 그 시절의 절박함에 마음이 아리기도 한다.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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