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개봉 다큐 영화 ‘땅에 쓰는 시’
제프리 젤리코상 첫 수상 조경가 다뤄
“미래 세대 위한 공간에 우리 자연 담아”
1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는 정영선(83) 조경가를 다룬다. 정 조경가는 서울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조경으로 지난해 조경계의 프리츠커상으로 불리는 제프리 젤리코상을 국내 최초로 수상했다. 그는 선유도공원과 샛강생태공원, 경춘선숲길 등의 조경을 담당했다. ‘땅에 쓰는 시’의 정다운 감독과 김종신 감독을 지난 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정 감독은 연출과 촬영, 편집을, 김 감독은 제작과 촬영을 각각 맡았다. 두 사람은 부부다.
선유도공원 등 빚어낸 국내 대표 조경가
정 조경가는 국내 1세대 조경가다. 1984년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와 아시아공원, 예술의전당, 광릉수목원 조경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국내 대표적인 조경가로 활동해 왔다. 서울대공원 생태동물원과 서울 아산병원, 호암미술관 희원, 제주 오설록 티 뮤지엄 조경 등을 빚었다. 공간의 역사성과 이용자들의 특징을 감안한 작업으로 유명하다. 외래종 대신 토종 수풀로 꾸미지 않은 듯 꾸민 한국적 조경미로 국내 조경의 방향을 제시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지난 5일부터 정 조경가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전시 ‘정영선: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9월 22일까지)를 열고 있기도 하다.
영화는 정 조경가의 조경 철학과 고뇌의 결과물 등을 조망한다. 정 조경가가 조성한 공간들이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며 어떤 모습을 띠고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스크린에 가득 채우기도 한다. 수려한 풍광에 113분 동안 눈이 즐겁다. 수풀을 보며 “너, 참 이쁘다”를 연발하는 정 조경가의 천진한 모습이 호감을 부르기도 한다.
다큐멘터리의 첫 삽은 2017년 떠졌다. 정 감독과 김 감독이 “조경계의 전설”을 인터뷰로 처음 만났을 때다. 부부는 “나도 다큐멘터리 좋아한다”는 정 조경가 말을 듣자마자 “함께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이파이브까지 교환”하며 약조했으나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정 조경가는 카메라 앞에 서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줄다리기 끝에 2019년 제작이 시작됐다. “국내 조경계를 위해 미래 세대에게 당신의 철학을 전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선생님께 있다”(정 감독)는 말이 노장 조경가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 감독은 “선생님 조경을 화면에 예술적으로 어떻게 승화시켜낼까 압박감이 컸다”며 “화면이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보다 못해 좌절감을 느끼고는 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경은 현재가 아니라 사계가 지나고 수십 년이 흘러서야 완성되는 것”이라며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에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전달할까가 선생님 조경 철학”이라고 덧붙였다.
”운명과도 같은 건축 영화의 길“
부부는 첫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2019) 이래 건축 관련 다큐멘터리만 만들어 오고 있다. 아내는 연출로, 남편은 제작으로 각각 업무를 나눠 일하고 있다. 두 번째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2022)는 함께 연출하기도 했다. ‘이타미 준의 바다’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재일동포 이타미 준(1935~2011)의 삶을, ‘위대한 계약’은 파주출판도시 설립 과정을 각기 되짚는다. 부부는 건축 전문 다큐멘터리 영화사를 표방하는 기린그림을 함께 설립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건축 영화’ 전문은 당초 의도했던 길이 아니다. 정 감독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건축에 매력을 느껴 케임브리지대학 건축대학원에서 건축과 영상을 전공했으나 건축 다큐멘터리로 진로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운명을 바꾼 건 이타미이었다. 김 감독의 고향 제주도를 찾았다가 시아버지 권유로 이타미가 설계한 수풍석뮤지엄을 찾았다가 “감동과 충격의 시간”을 겪었다. 정 감독은 “따님인 유이화 건축가를 찾아 영화를 만들게 됐고, 졸지에 인생 방향이 정해졌다”고 돌아봤다. 부부는 “행복한 결론”이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