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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장손 역 김재철 "믿어준 아내 덕에 슬럼프 이겨냈죠" [인터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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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장손 역 김재철 "믿어준 아내 덕에 슬럼프 이겨냈죠" [인터뷰②]

입력
2024.04.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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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박지용 역으로 열연한 배우 김재철
교포 아내, 일 없을 때도 "오빠는 잘될 거야" 응원
캐스팅 불발로 무너진 순간, 일으켜준 선배들

배우 김재철이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키이스트 제공

배우 김재철이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키이스트 제공

이쯤 되면 영화 '파묘'를 안 본 게 이상할 정도다. 개봉한지 46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파묘'는 적수가 없다. 누적 관객 수는 1,133만 5,762명이다.

믿고 보는 배우 최민식과 유해진, MZ무당을 연기하며 소름 돋는 연기력을 보여준 김고은과 이도현이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극 초반부 관객의 몰입을 도운 장손 박지용 역의 배우 김재철이다. 그는 정확하게 계산된 연기와 특유의 분위기로 오컬트 미스터리 장르의 매력을 끌어올렸다.

이번 작품을 통해 김재철을 처음 접한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는 지난 2001년 이병헌 주연의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영화 '마스터' '공조' '조작된 도시' '백두산'에서 단역으로 얼굴을 비췄고 '인질'의 조연을 거쳐 '파묘'의 박지용 역을 맡으며 그간의 연기 내공을 폭발시켰다.

안방극장에서도 활약해왔다. 드라마 '하이에나'에서 케빈 정 역을 맡아 김혜수와 호흡을 맞췄고 '허쉬' '연모' '킬힐' '불행을 사는 여자' '스틸러 : 일곱 개의 조선통보' 등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 눈도장을 찍었다.

긴 시간 연기를 해왔지만 대중에 '김재철'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킬 기회는 많이 없었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온 그이지만 슬럼프도 종종 찾아왔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온 데는 아내의 역할도 컸다. 아내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족의 굳건한 믿음과 지지 덕에 김재철은 '파묘'를 만나 원 없이 연기를 펼치게 됐다.

'천만 배우'에 등극한 김재철을 만나 그간 밝히지 않았던 인생 이야기와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파묘' 박지용 역의 김재철. 키이스트 제공

'파묘' 박지용 역의 김재철. 키이스트 제공

아빠 연기에 몰입한 순간

"제 딸이 두 돌이 지났어요. 결혼한 지는 4~5년 됐고요. '파묘' 촬영할 땐 아이가 정말 갓난 아기였어요. 실제론 딸이지만 극 중에선 아들이 있는데 부성애는 같죠. 민식 선배한테 '내 아들 좀 살려주세요'라는 대사를 하는데 울먹이면서 했어요. 감독님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너무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마음을 안에만 갖고 있어야지 캐릭터가 한쪽으로 쏠리지 말게 하자고 하셨고 충분히 납득이 됐어요."

박지용을 만들어간 과정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하나하나 다 맞춰보고 선언하는 장면도 녹음하며 맞춰보고 그랬죠. 상덕(최민식)과 전화 통화신이 있는데 원테이크로 길게 촬영하느라 힘들었지만 시간 안에 찍어내서 뿌듯했던 신이에요. 어렵지만 재미있었어요. 보통 그런 느낌의 인물이 돼서 연기를 하는 배우도 있지만 저는 만들어나가는 느낌이었죠. 감독님도 어느 정도까지 하면 '됐어. 이제 현장에서 만들자. 뼈대는 심었으니까 지금 정할 수 없다' 하셨어요. 선배님이 연기를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그게 너무 재밌기도 했고요."

끝없는 고민과 노력

"개인적으로 처음에 화림(김고은)을 만나고 상덕 만나서 가는 사이에 무미건조한 말투라고 해야 하나 그런 부분이 있어요. 큰 병을 겪고 있고 아들도 있는 상태의 사람 심리에서, '드러내지 않지만 부탁을 하는 말투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 그게 힘들었죠. 리딩하고 깎아내고 현장에서 선배와 같이 하면서 또 새로운 것들이 생겨났어요. 무난한 신들이 연기하긴 더 어려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서도 에너지를 줘야 하는데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이 됐어요. 자연스러움과 어색함의 중간 지점을 찾는 게 어렵더라고요. '이 말을 할 때는 고개를 돌리지 말고 허공을 보고 말하자' 그런 것들까지 디테일하게 생각했어요."

뜨거운 반응에 감격

"전 계속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가공적인 인물이라서 너무 자연스러워도 안될 거 같고 중간을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너무 부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걱정도 했는데 사람들은 의뭉스럽고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이면서 유약함도 느껴지는 강한 사람 같기도 하고 좋았다고 하니까 오히려 감사해요. 제가 저를 보는 것보다 관객이 봐주는 게 정확하다고 생각하고요."

2020년 '하이에나'로 주목받다

"드라마 '하이에나' 오디션이 운명처럼 들어왔어요. 너무 어두울 때가 되면 빛이 오고 그렇더라고요. 아예 일이 없다가 연극 한 편이 되면 버티고, 단역이라도 하게 되면 1년을 버티고 그랬어요. '하이에나'를 시청자들이 인상깊게 많이 봐주셨는데 제 삶에는 큰 변화가 없더라고요. 똑같이 작품 들어오면 하고 그렇게 많이 알아봐 주지도 않고요. '내 팬들은 어디에 숨어있나' 싶었죠. 하하."

초심을 지키는 삶

"주변에선 제가 잘 돼서 좋다는데 제 스스로 생각할 때는 달라진 게 없는 느낌이고 늘 같은 마음이에요. 그게 또 건강한 거 같고요. 이렇게 영화가 잘 돼서 인터뷰도 하는데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제 나름대로 계속 열심히 연기하는 거지, 더 나아가서 뭔가를 바라진 않아요."

김재철이 '파묘'를 통해 천만 배우에 등극했다. '파묘' 스틸컷

김재철이 '파묘'를 통해 천만 배우에 등극했다. '파묘' 스틸컷

연기의 원동력, 아내

"연애를 6년 동안 하고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제일 가까이서 저를 오래 본 거죠. 아내는 제가 일이 없을 때도 한 번도 다른 일을 생각해 보라고 하지 않았어요. '오빠는 좀 천천히 되더라도 될 거니까 기다리다 보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해 줬죠. 덕분에 오디션을 더 열심히 보고 영화 한 편 더 보고 그럴 수 있었고요. 가끔은 '칭찬 좀 해주지' 하고 서운 할 때도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니까 버틸 수 있는 거 같아요."

교포 연기에 도움

"아내가 실제로 미국 교포거든요. 저 때문에 한국어가 늘었는데 저는 영어가 안 늘어서 할 말이 없어요. 하하. 잔소리 들을 명분이 생기는 거죠. 교포 역할을 할 때 아내가 많이 도와줬어요. 잘했다고 얘기해주고 나쁘지 않았다고 말해줘서 다행이다 싶었죠."

슬럼프를 이겨내다

"연기 슬럼프는 중간에 얕게 자주 있었어요. 제 성격이 좋은 일이 있어도 흥분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한 번은 제가 대본 리딩까지 하고 나서 캐스팅이 불발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이렇게까지 버티는 게 힘들다' 하고 좌절하고 무너지기도 했는데 좋은 선배들이 옆에서 힘이 돼 줬어요. '작은 거라도 하라면 해라' '자존심을 연기로 잘 안고 표현해라' '인간 김재철로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런 데 에너지 쏟지 말고 빨리 다른 오디션을 봐라' 해주셔서 잘 넘어온 거 같네요. 아내랑도 얘기를 많이 했는데 제가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으니까 회사원이나 직장인들의 노고를 모르잖아요. 제가 무명 때 겪은 힘든 일처럼 각자의 힘든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인내로 빚은 배우 생활

"누가 이 일을 하라고 등떠민 것도 아니고 제가 선택한 거잖아요. 한 계단씩 넘어올 때마다 버티게 해줬지만 확 잘 되지는 않았으니까 이번에 흥행이 됐다고 어떤 기대가 있진 않아요. '이 산을 잘 넘어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크죠. 제가 이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게 숙제였고, 잘 해내서 좋고 보너스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영화를 처음부터 이렇게 관객이 많이 들 거라고 생각하고 찍지는 않잖아요. 대신 앞으로 뭐가 오면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은 커요."

배우로서의 목표

"나무처럼 뿌리를 더 깊고 단단하게 다져서 오래 버티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릴 때는 좀 활짝 핀 꽃처럼 화려하고 싶었던 적도 있고, '왜 피어지지 않는 거지' 하고 아쉬울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나무 같은 배우가 되라는 건가 싶어요. 꽃은 빨리 지잖아요. 40대가 되면서 '느리게 온 대신 좀 단단하고 큰 나무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해요. 은은하게 향기를 내뿜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마다 속도가 있다는데, 저만의 속도를 너무 급하지 않게 잘 다져서 가고 싶습니다."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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