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 2번째 챔피언
148번째 도전 끝에 우승 드라마
"마지막 홀 버디 후 함성 안 잊혀"
올해는 무명 아닌 디펜딩 챔피언 자격
11일부터 인천 클럽72서 개막
"욕심내면 안 되더라. 겸손한 자세로"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 우승으로 생명줄이 길어진 느낌이에요.”
‘147전 148기’ 드라마를 쓴 이주미(29)는 더 이상 무명 골퍼가 아니다. 당당히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오는 11일 인천 클럽72 하늘코스(파72)에서 개막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3회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에서 타이틀 방어에 도전한다.
최근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이주미는 “매년 나오는 상금 순위가 신경 쓰였는데, 내년까지 시드 걱정 없이 뛸 수 있어 한결 편하다”면서도 “우승자 시드(2025년까지 출전권 확보)로 계속 가는 것보다는 내 실력으로 시드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은 처음 우승한 대회니까 더 잘하고 싶다”고 2연패 의지를 드러냈다.
2015년 KLPGA 정규투어에 데뷔한 이주미의 골프 인생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첫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147차례 대회에서 무관에 그쳤다. 2018년에는 21개 대회에서 딱 한 번만 컷을 통과했고, 나머지 20차례는 탈락했다. 2020년까지 1, 2부 투어를 오가는 암흑기를 보내느라 부모님에게 ‘제2의 인생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듣기도 했다.
이주미는 “성적이 안 나니까 골프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다 보니까 그때 당시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은 뒤 “이왕 시작했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버텨보기로 했다”고 돌아봤다.
벼랑 끝에 몰렸던 이주미는 2021년부터 반등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해 7월 대보 하우스디 오픈에서 공동 5위에 올라 처음으로 ‘톱10’을 넘어 ‘톱5’에 들었다. 상금랭킹도 54위로 60위 안에 들어 이듬해 정규투어 시드를 지켰다. 2022시즌엔 ‘톱10’에 두 차례 진입했고, 상금랭킹은 58위로 간신히 통과했다.
상금에 대한 강박은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강력한 한 방이 없었다. 9년째 무명 신세를 면치 못한 이주미는 마침내 지난해 4월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에서 일을 냈다.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1라운드부터 공동 2위에 자리하더니, 2라운드에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3라운드에 선두권 선수 중 유일하게 오버파를 적어내며 공동 4위로 내려가 마음을 비웠는데, 마지막 4라운드에 4언더파를 몰아쳐 최종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첫 우승을 일궈냈다.
이주미는 “3라운드에 선두에서 밀려났을 때 ‘우승은 역시 내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며 “늘 선두를 유지했던 적이 없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승에 대한 강박도 없었다”고 밝혔다. 마음을 비운 건 신의 한 수였다. KLPGA 투어 간판 박민지, 박지영, 박현경이 챔피언 조에서 격돌했고, 이주미는 그 앞 조에서 4라운드를 치렀다. 전반에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간 그는 후반 마지막 두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 챔피언 조에 압박을 주는 동시에 우승을 거의 굳혔다.
이주미는 “3라운드까지 선두였다면 부담이 됐을 것”이라며 “챔피언 조에 들어가지 않아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또한 “마지막 날 16번 홀까지 솔직히 기대를 안 했다”며 “마지막 홀(파5) 세 번째 샷을 홀컵 바로 옆에 붙인 뒤 버디에 성공하고 들린 함성이 아직도 안 잊힌다. 우승에 한 발짝 가까워진 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오랜 숙원을 풀자 ‘골프를 그만두라’는 부모님의 말은 쏙 들어갔다. 이주미는 “우승 순간 실감도 안 나고 어색한 상황이라 눈물이 안 났는데, 부모님은 두 분 다 우셨다”며 “이제 그만두라는 말 대신 ‘얼마 안 남았다’고 얘기하신다. 전성기 기량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더 바짝 정신을 차리고 하라는 의미”라고 미소 지었다.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을 ‘정말 그냥 행복했던 대회’라고 정의한 이주미는 올해 다시 낮은 자세로 시즌을 치를 계획이다. 지난해 처음 우승 맛을 본 다음 11개 대회에서 7차례나 컷 탈락한 경험을 떠올린 그는 “첫 우승 후 나도 모르게 내 실력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는데, 욕심내면 안 되더라”면서 “역시 겸손해야 한다. 현실적인 목표는 지난해보다 높은 상금 순위”라고 강조했다. 다만 우승은 가급적 디펜딩 챔피언 타이틀을 지킬 수 있는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에서 이뤄내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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