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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죄"...카뮈 '이방인'은 왜 사형선고를 받았나

입력
2024.04.05 13: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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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이방인'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에 대해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1993년 등단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 작가와 출판 편집 기획자 출신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로 글을 씁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베르 카뮈. 위키미디어 커먼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베르 카뮈. 위키미디어 커먼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1942)을 처음 읽으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짧은 소설이지만 빨리 읽을 수 없다. 간결한 문장은 아름답고 명료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절제된 묘사 때문에 맥락을 충분히 잘 파악하기 쉽지 않다. 프랑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리면, 이 소설의 문장은 하나하나가 모두 섬 같은 데가 있기 때문이다. 카뮈가 의도한 스타일이다. 그는 ‘작가 수첩’에 이렇게 썼다. "진정한 예술작품이라면 절제된 문장에 눈부신 광채를 내뿜는 다이아몬드처럼 풍부한 암시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 빛을 제대로 느끼려면 절제된 문장이 드러내는 뉘앙스를 잘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작품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이다. 오래된 번역본에서는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돌아가셨다"라고 옮겼다. 이것은 명백한 오역이다. 프랑스어 원문을 보면, 어머니(mère)가 아니라 아이들 말투인 엄마(maman)이고 ‘돌아가셨다’거나 ‘세상을 떠나셨다’와 같은 격식 갖춘 단어가 아니라 무덤덤하게 사용하는 일상어인 ‘죽었다(morte)’이기 때문이다. 이런 뉘앙스를 이해하는 것은 이 소설의 화자인 주인공 뫼르소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현대 언어로 번역한 '최신 고전'의 힘

한국어 번역본을 읽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읽어내기 어렵다. 그래서 한때는 독서토론을 준비하면서 여러 종의 번역본을 참고하며 내용을 파악했다. 다양한 번역을 통해 뉘앙스를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두 가지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우선 이 작품은 짧은 장편소설이다. 150페이지가 안 된다. 책값도 싸고 분량도 많지 않다. 그리고 저작재산권이 공공의 소유가 된 2011년 이후 많은 전공자들이 다양한 번역본을 내놓았다.

요즘은 프랑스어 원문과 영어 번역판도 참고하는 추세다. 프랑스어 텍스트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공짜로 볼 수 있고 최신 영어 번역판 역시 전자책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프랑스어를 모른다 해도 인공지능(AI) 프로그램과 사전의 도움을 받으면 상당히 잘 파악할 수 있다. 참고할 만한 ‘이방인’ 연구 논문도 아주 많다. 영국의 한 평론가는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품 분량만큼의 해설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영어판본의 경우 초기 번역은 너무 친절한 해석으로 평가된다. 카뮈의 스타일과 닮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역도 많았다. 이후 여러 번 재번역되었는데, 제목은 ‘스트레인저(The Stranger)’와 ‘아웃사이더(The Outsider)’ 두 가지이다.

이방인·알베르 카뮈 지음·김진하 옮김·을유문화사 발행·248쪽·1만2,000원

이방인·알베르 카뮈 지음·김진하 옮김·을유문화사 발행·248쪽·1만2,000원

필자는 이 소설을 잘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 번역본 5개, 영어 번역본 2개와 프랑스어 원문을 참고하며 읽었다. 이런 식의 독서 과정을 설명하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당연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1942년에 발표된 이래 101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판매량은 수천만 부를 넘어섰을 것이다. 2011년에 확인할 수 있는 프랑스 기록만으로 판매량이 700만 부가 넘고 당시 일본 번역본 판매량 역시 400만 부가 넘었다. 영어판이나 한국어판도 엄청난 부수가 판매됐을 것이다. '이방인'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카뮈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또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고 연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공유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현상이다. 그런 ‘이방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번역본을 참고하며 읽는 것이 최선이다.

번역본은 좋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최신 버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에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이방인' 김진하 번역본을 권한다. 작품 배경과 함께 프랑스어의 뉘앙스를 설명하는 많은 주(註)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김화영이 2019년에 다시 번역해서 내놓은 민음사 개역판의 작품 해설도 읽어 보는 것이 좋다. 오랜 카뮈 전문가의 자세한 해설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물론 어떤 글이든 그것은 작가의 ‘의견’이다. 미심쩍은 부분은 프랑스어 판본과 영어 판본을 참고하며 확인해야 한다. 최신 영어 판본은 산드라 스미스가 번역하고 2012년 펭귄에서 출간된 ‘아웃사이더’를 권한다. 김진하와 산드라 스미스, 심지어 김화영도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현대인을 위해 현대의 언어로 새로이 번역된 고전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이방인·알베르 카뮈 지음·김화영 옮김·민음사 발행·270쪽·1만 원

이방인·알베르 카뮈 지음·김화영 옮김·민음사 발행·270쪽·1만 원


죽음으로 연결되는 '이방인' 1, 2부

소설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주인공 뫼르소 엄마의 장례식에서 시작해 우연한 기회에 권총으로 아랍인을 살해하는 데서 끝난다. 2부는 주인공이 살인자로 체포되고 재판받는 과정이다. 거울 이미지를 보는 것처럼 1부와 2부의 길이가 거의 같다. 소설은 무엇보다 죽음으로 연결된다. 엄마의 죽음에서 시작해 권총으로 아랍인을 죽이고 주인공의 사형 집행일 전날에 마감된다.

이야기 전체는 재판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이라는 격식을 갖춘 공간에서 엄마의 양로원 동료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보여야 할 슬픈 표정과 같은 역할 연기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카페오레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의 잘못을 저지른다. 블랙커피는 밤을 새우기 위한 음료이지만 카페오레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입관된 엄마를 보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저 "예"라고 대답하고 엄마 나이를 묻는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으며 울지도 않았다. 함께 밤을 새우기 위해 모인 엄마의 친구들이 맞은편에 앉자, 뫼르소는 그들이 자신을 재판하기 위해 거기에 왔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후 뫼르소는 훗날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한다. 바로 다음 날 옛 사무실 동료였던 여성을 만나 정사를 벌이고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간다. 같은 건물에 사는 포주인 남자와 어울려 단짝 친구가 되고 함께 해수욕을 갔다가 아랍인들과 패싸움을 벌인다. 뫼르소는 포주의 권총을 가지고 있다. 싸움이 일단락된 뒤 혼자 산책을 나가는데 하필 싸웠던 아랍인 중 한 명을 만난다. 아랍인은 칼을 꺼내 들고 뫼르소는 눈부신 햇살 때문에 판단이 흐려진 상태에서 총을 쏜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다음 장면이다. 쓰러진 사람을 향해 뫼르소는 다시 4발을 발사한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정상참작 없이 사형이 선고된 것은 추가로 발사된 4발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뫼르소가 자유의지로 자신의 감각적 판단에 따라 관계를 선택하고 행동하는 모습이다.


사회 관습 거부한 자에게 내려진 사형

2부에서 뫼르소는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유의지와 판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완전히 수동적인 상태에 놓인다.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그 이방인은 살인 사건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습, 그러니까 엄마의 장례식에서 보여야 할 태도를 보이지 않은 죄로 재판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뫼르소는 좀 더 좋은 판결을 받기 위해 거짓말이나 연기를 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사형 선고는 예고된 것이었다.

알베르 카뮈는 1957년 역대 두 번째로 어린 43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가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 여성들과 대화하는 모습. 위키미디어 커먼스

알베르 카뮈는 1957년 역대 두 번째로 어린 43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가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 여성들과 대화하는 모습. 위키미디어 커먼스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런 사회적인 유희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는다. 뫼르소는 자신의 삶을 손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감정을 숨길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런 태도는 사회구조를 위협하는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사람들은 관례대로 공식에 따라 적응하고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의 모습을 읽어낸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많은 독자들은 오래전에 ‘이방인’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읽어보면 대개는 옛날에 읽은 그 작품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텍스트도 달라졌을 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이나 경험, 지식 수준이 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제시한 ‘새로운’ 방식으로 최근의 ‘이방인’을 다시 만난다면 달라진 뫼르소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

강창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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