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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웃다 꽃물 들었네

입력
2024.04.04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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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전북 고창 선운사 동백꽃. 절정에 툭 미련 없이 떨어진 동백이 애잔하기 그지없다.

전북 고창 선운사 동백꽃. 절정에 툭 미련 없이 떨어진 동백이 애잔하기 그지없다.

한참을 생각했다. 고창으로 갈까, 강진으로 갈까. 봄 마실 갈 곳이 많아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가장 늦게 핀다는 선운사 영산전 뒷마당에도 동백꽃이 활짝 피었대서 고창으로 향했다. 겨울부터 봄까지 피고 지는 꽃. 산사를 감싸 안은 동백나무 숲이 선홍빛으로 곱게 물들었다.

절정에 툭 떨어진 동백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서러움이 내려앉은 마음속으로 딸랑딸랑 맑은 풍경 소리가 들어왔다. 그 순간 송창식의 ‘선운사’가 떠올라 낮은 소리로 불러봤다. 떨어지는 꽃송이가 하도 슬퍼서 떠나려던 임도 차마 못 떠날 거라는 노랫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그래서 누군가 동백은 하늘에서, 땅에서, 가슴에서 세 번 피는 꽃이라 했나 보다.

방그레 웃게 하는 동백도 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강원도 시골 마을의 순박한 소년과 말괄량이 점순이가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동백꽃은 붉거나 희다. 그런데 소설 속 동백꽃은 노랗고 알싸해 고개를 갸웃대는 이가 많을 게다. '알싸하다'는 매운맛이나 독한 냄새로 콧속이나 혀끝이 알알하다는 뜻. 먹을거리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소설의 배경은 강원도의 봄. 강원도에서 살아 본 사람은 안다. 소설이 쓰인 1930년대 그곳에 동백꽃이 없었다는 것을. 1970·80년대 강원도에서 살았던 나 역시 동백꽃을 본 적이 없다.

소설 ‘동백꽃’의 의문점은 사투리에서 풀린다.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이라고 불렀다. 4월에 노란 꽃이 피는 생강나무엔 향신료와 한약재로 쓰이는 생강이 열리지 않는다. 잎과 꽃잎을 비비거나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나니까 그리 불렀다.

이쯤 되면 알겠다. 강원도 지역 가요와 민요 속 동백이 뭘 말하는지. 맞다. ‘소양강 처녀’ 2절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과 ‘강원도아리랑’의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의 동백도 노란 꽃이 피는 생강나무다.

이상기후로 꽃 피는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그 덕인지 탓인지 우리나라 최북단 고성에서도 동백꽃 축제가 열린다. 산사에서, 소설에서 동백꽃에 울고 웃다 보니 온몸에 빨갛고 노란 꽃물이 들었다.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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