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외교문서 공개
KAL007편 격추사건 '러시아 자료' 확보 위한 외교전
러시아 "특사 안 오면 미국과 일본에 자료"
결국 특사 파견…블랙박스 없이 일부 문서만
옐친 방한해 녹음테이프 사본 전달
한국 정부가 1992년 방한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9년 전 격추된 대한항공(KAL) 여객기 KE-007편 블랙박스 원본을 확보하려다 무위로 돌아간 사실이 확인됐다. 러시아 측이 원본을 제공하겠다던 약속을 깨면서 핵심 기록도 없고 음성파일도 사본인 자료만 전달한 것이다.
29일 외교부가 공개한 1992∼93년 비밀해제 외교문서에는 1992년 11월 옐친 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된 가운데 KAL기 자료 제공 여부를 둘러싼 양국의 치열한 심리전이 고스란히 담겼다.
"블랙박스 관련 자료 공개하겠다"…러시아, 자료 내용·일정 협의 없이 특사 접견일 통보
문서에 따르면, 옐친 대통령은 1992년 9월 10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전화해 KAL기 블랙박스 내용을 포함한 관련 사건 관계자료를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블랙박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전해주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정부는 다급하게 움직였다. 일단 러시아 측에 미국이 아닌 한국에 먼저 블랙박스 관련 자료를 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자료 전달 방식 협의가 아닌 '9월 28~30일 모스크바로 특사 파견'이었다. 이후 러시아 측은 한국 특사의 대통령 예방 시간을 10월 14일 오후 3시로 설정하고, 특사가 오지 않으면 같은 날 오후 5시 잡혀 있는 미국 유족 대표 측에 똑같은 자료를 전달하겠다고 했다. 결국 정부는 교통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모스크바로 보내야 했다.
KGB "KAL기, 첩보행위 없었지만…자료 은폐하고 미국 책임 돌려야"
한국과 미국이 받은 자료는 블랙박스 자료를 분석한 문서들이었다. 이 중에는 '여객기의 첩보행위는 없었다'는 러시아 국방장관과 KGB 의장의 서한이 담겨있었다. "첩보행위를 했기 때문에 격추했다"는 구소련 측 주장이 허구임을 자인한 문서인 것이다. "비행자료를 서방에 은폐하고 사건의 모든 책임을 미측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소련 공군이 여객기를 피격하기 전 여러 차례 경고 신호를 보냈다는 주장은 자료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블랙박스 원본 제공한다더니 빈손…외교부 "우린 몰랐다고 대응 중"
1차 자료는 제공됐지만 원본은 여전히 러시아 측 손에 있었다. 주러대사는 11월 옐친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블랙박스 자체를 인도해달라"고 촉구했다. 옐친 대통령은 방한 직전인 10월 29일 노태우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비행기 운항 중에 녹음된 문서기록은 가지고 있는 바 만일 한국 측이 이 녹음 테이프에 관심이 있다면 전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옐친 대통령이 전달한 자료에는 진상규명의 핵심인 비행경로기록(FDR) 테이프가 아예 없었고, 조종석음성녹음(CVR) 테이프도 원본이 아닌 사본이었다.
당시 당황하던 정부의 모습은 외교문서에 고스란히 담겼다. 외교부는 옐친 대통령이 자료를 전달한 직후 FDR이 없고, CVR도 사본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외교부는 전달식이 있었던 당일인 11월 19일 주러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러시아 측에 설명을 요구할 것을 촉구했다. 주러대사는 러시아 측과 접견했고, 러시아 측은 "FDR을 주겠다고 한 적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외교부는 주러대사관에 "외교부는 교통부가 청와대로부터 직접 블랙박스 인수를 받아 분석해 FDR 누락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언론 발표 직전 통보받았다고 대응하고 있다"며 언론대응에 주의할 것을 전하기도 했다.
ICAO 합동조사 개시…블랙박스 원본, 1993년 7월 입수
한국이 원했던 블랙박스 원본은 결국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넘겨졌다. 한국과 러시아, 미국, 일본이 12월 8∼9일 모스크바에서 만나 ICAO에 KAL기 격추 사건 재조사를 요청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부가 있는 ICAO는 1993년 6월 14일 재조사 결과를 담은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고, 7월 8일 몬트리올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FDR과 CVR 원본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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