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실학자 최한기의 '통경' 발굴
젊은 시절 유교 13개 경전 연구 집대성
원고 검토한 다른 성리학자 "간행 말라"
동서양 문명의 융합과 조화를 꿈꾸었다는 혜강 최한기(1803~1879)의 통경(通徑)이 처음으로 발굴 공개됐다. 조선 후기 사상사 연구의 주요 자료로 평가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5일 "이름만 전하던 최한기의 통경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최한기는 유교문명과 서구문명의 통합을 구상한, 기학(氣學)으로 주목받은 조선 후기 학자다. 하지만 '지구전요' '지구전후도' '기측체의' 등 서양 과학 기술에 대한 저술은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유교에 대한 본격적인 저술은 적었다.
통경은 이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저술로 꼽혔으나 책의 이름이나 서문 일부 정도만 알려진 상태였다. 이번에 발견된 통경은 충남 부여 함양 박씨 문중에서 기증받은 서책을 분류하다 찾은 것으로 모두 20책 55권 분량이다. 한중연 장서각은 각 가문으로부터 고문서를 기증받아 연구한다.
사서삼경 넘어 유학 13경을 모두 연구한 최한기
성리학에서 중요시하는 경전이라면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혹은 오경(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이다. 통경은 여기에다 춘추좌씨전,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등을 더한 13개의 경전 전체를 다룬다. 조선말 양명학, 고증학 바람이 불자 성리학자들은 옛 경전 연구의 폭을 더 넓히는데, 이 흐름 위에 있는 것이 13경 연구다.
통경은 형식 자체가 파격이다. 최한기는 자신이 정한 학부(學部), 사물부(事物部), 의절부(儀節部) 기준 아래 271개 조목에 맞춰 13경의 원전들을 완전 해체 재조립하는 수준으로 편집하고 주석을 달아뒀다. 성리학자가 옛 성인의 책을 이렇게 다룬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내용 또한 그렇다. 한국사상사 연구자로 다산 전문가로도 유명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도널드 베이커 교수는 "최한기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적용하려면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유교의 핵심 개념이 놀랍게 확장된 것"이라 평했다.
표지, 이름 없이 필사본으로 발견된 통경
내용과 형식상의 파격은 이번에 발견된 통경이 표지나 이름이 없는 필사본 형태라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최한기가 성리학자 김헌기(1774~1882)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최한기의 원고를 검토한 김헌기가 "이 글은 책 상자에 넣어두라" "급히 책을 간행하는 일은 시작도 하지 말라"고 하는 등 간곡하게 만류하는 답장을 썼다. 앞뒤 정황상 김헌기가 검토한 원고가 바로 통경일 수 있다는 게 이창일 한중연 고문서연구실 책임연구원의 추정이다.
장원석 고문서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최한기 사상의 출발점이 예상보다 동양의 전통에 훨씬 더 깊이 뿌리를 뻗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귀한 자료인 만큼, 앞으로 관련 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만한 발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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