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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을 끝낼 지도자에 투표를

입력
2024.03.25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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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한민국은 전쟁 중이다. 전쟁(戰爭)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나 단체 사이에서 무력을 사용해 행하는 싸움이다. 외부 세력과의 물리적 충돌이 떠오르는 이유다. ‘고려 거란 전쟁’이 그렇고,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이 그렇다.

역사책이나 드라마에선 저항하고 승리한 서사를 강조하거나 대결 구도를 부각해 극적 스토리를 보여주지만, 전쟁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잔혹한 파괴 행위다.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전쟁은 외적과의 충돌이 아니라 내전(內戰)이다. 싸울 필요가 전혀 없을 것 같은 한 민족인데도 일단 충돌하게 되면, 외적과 싸울 때보다 피해자도 훨씬 많고 잔인함도 이를 데 없다. 단순히 상대를 물리치거나 밖으로 쫓아내는 차원을 넘어 내부의 적대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사가 그렇게 말해준다. 6·25 전쟁은 남북 양측 사상자만 200만 명이 넘었고 주요 산업시설과 인프라가 모조리 파괴됐다. 미국 남북전쟁에서도 사망자는 60만 명을 넘어, 제1차 세계대전이나 2차 대전 당시 미군 사망자보다도 많았다. 1936년 총선 결과가 도화선이 돼 발생한 인민전선과 국민전선 간의 스페인 내전은 민간인을 포함해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러시아 혁명 이후 발생한 적백 내전과 2차 대전이 끝난 뒤 벌어진 중국의 제2차 국공 내전도 각각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대한민국은 현재 물리적 충돌만 없을 뿐 심리적 내전 상태다. 정치 세력 간의 긴장감만 따진다면 전쟁 직전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양대 정당은 상대를 굴복시키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드러나는 상대를 향한 적대감도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탄핵과 압수수색, ‘입틀막’과 '히틀러' 등 상대를 몰아붙이기 위한 거친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누가 정권을 잡든지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야당은 거칠고 과격한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매번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죽마고우도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면 분노 조절을 못하고 한순간에 척을 지는 걸 보면, 대한민국은 지금 아주 조그만 불씨가 예기치 않은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는 비상 상황이다.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폭동이 남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임계치에 도달한 심리적 내전을 끝내려면 지지자들을 다독일 수 있는 리더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1933년에 나온 독일군 부대지휘교본에선 전쟁터에서 최악의 리더는 부지런하지만 멍청한 지휘관이라고 봤다. 직책이 낮을 때는 근면함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리더의 자리에 가면 조직을 구렁텅이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잘못된 신념과 좁은 식견을 토대로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부하들을 사지로 내몬 지휘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부지런하고 멍청한 지도자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도자가 더 낫다는 얘기는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총선을 앞둔 여야 수장들은 전쟁터의 지휘관과 같다. 유권자들은 지역구 후보는 몰라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보고 있다. 두 사람의 하루 동선을 살펴보면 게을러 보이진 않지만, 현명함을 기준으로 따지자면 물음표가 남는다. 내전을 끝낼 지도자는 누구일까. 그런 사람에게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가 가야 한다.



강철원 엑설런스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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