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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분노 다스리기

입력
2024.03.2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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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30대 직장인이 방문했다. 최근 들어 업무가 많아서 바쁘게 지내는 중인데, 윗사람이 하는 사소한 말에도 짜증이 치밀 때가 있고, 평소엔 좀 우울한 데도 이유 없이 화가 날 때가 많아져 아내와도 서먹해졌다고 한다. 근래 들어 체력도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불면증도 생겼는데 아무래도 분노 조절 문제는 아닌지 궁금해했다.

행동 과학 연구들에 따르면 인간은 몇 가지 규칙에 따라서 행동을 결정한다고 한다. 첫 번째 규칙은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자라면서 경험한 환경에 좌우된다는 말이다. 부모나 형제 친구들이 쉽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사용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스트레스에 처할 때 익숙한 분노 감정에 의존한다.

두 번째 규칙은 본인이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며 마트 바닥에서 뒹굴어서 원하는 것을 얻은 경험이 있는 아이는 다음에도 비슷한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부하 직원들이 하는 일이 맘에 들지 않아 참을 대로 참았다가 화를 내는 팀장이 있다. 그랬더니 제 맘대로 하던 직원들이 눈치를 보며 시킨 일들을 완벽히 해내는 것을 경험한다면 앞으로 일부러 화를 내 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평생 권위주의적 태도로 강압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직장상사나 부모는 그런 경험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 규칙은 동물 본성에 가까운 것이고, 사회 속에서 성장하면서 온정과 협력, 공감과 대화의 힘을 경험하면서 좀 더 인간다워진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별 특성을 반영한 교육과 인간적 분위기가 필요하고, 본인 행동을 스스로 관찰하고 조절하는 메타인지의 성장 수준에 달려 있다.

사실 현실에서는 원하는 걸 가지고 싶은 마음에 애태우거나 혹은 분노 감정에 휩싸일 때, 그 열기에 휩싸여 어떤 행동이 현명한 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 특징이라고 말하는 이성과 논리에 의거한 합리적 판단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수많은 책에서는 이성과 성찰을 권유하지만, 실상 우리들은 감정 혹은 감성에 더 많은 지배를 받는 것 같다.

분노나 슬픔, 놀람, 불안 등의 감정은 곧바로 밖으로 표출되기도 하고(돌발성 분노), 일정 시간이 지나 뇌 전두엽을 다녀오면서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바뀌기도 한다. 타고난 성격에 따라 화를 풀어야 사는 사람은 조금 침착해진 상태에서 본인의 입장과 억울함을 이야기할 것이고, 타고나기를 조용한 사람은 그저 흘려 보내거나 그 억울함을 마음 속에 묻어두는 경우도 있다(잠재성 분노).

문제는 이성으로 다스리기 전에 날것의 감정이 폭발할 때다. 눈이 뒤집혀 앞 뒤 가리지 않고 감정을 쏟아 붓는 경우도 있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지 누군가 남 탓으로 느껴지면서 엉뚱한 사람을 미워하게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서 스스로 왜 화가 나는지 알게 될 때가 많다. 내 능력이 조금 모자란 것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고, 순간 무의식 속에서 중첩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느꼈던 억울함과 섭섭함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남들은 끝까지 모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우리들은 닥치는 모든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이고, 스스로 그걸 깨닫기까지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明)상태로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이리라.

내 마음 속에서 격동을 느껴지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우선 내 마음 속 불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 감정은 억울함·분노·짜증·질투에서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화났다는 걸 인정하자.

두 번째로는 감정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자.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던지 짧은 산책을 다녀오는 동안 뜨거운 감정은 주변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서 좀 더 차분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혹시 그 사이에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이 있으면 일단 참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내뱉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보지 않는가.

감정이 좀 가라앉은 다음이라면 그 상황을 복기해 보는 것도 도움된다. 내가 왜 화가 났고, 누가 문제였는지 ‘내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저 그 인간이 나쁜 놈이라 그렇다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분노를 어떻게 표현해야 당신에게 이로운 것인지 생각해 보라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간이 흐른 후에 그때 감정을 상대방에게 조분조분 말하는 것이 도움될 수도 있고, 그런 수준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그저 일기장 한 구석 명단에 적어놓고 지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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