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 등 외투기업 베트남 정부에 촉구
지난해 폭염으로 전력 수요 늘면서 태부족
"베트남 투자 원하지만 전력 부족 탓 망설여"
한국, 미국 등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들이 베트남 정부에 전력 공급 계획 마련을 촉구했다. 때 이른 폭염으로 전기 수급에 비상이 걸려 공장 가동까지 중단해야 했던 지난해 악몽이 되풀이될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전력 부족 상황이 반복될 경우 해외 기업이 베트남 투자를 망설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수시로 전기 끊겨 기업 손해 막대”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하노이에서 팜민찐 베트남 총리와 기획투자부 주재로 열린 ‘베트남비즈니스포럼(VBF)’에는 한국, 미국, 일본, 유럽, 영국 등에서 온 상공인 협의체 대표, 정부·진출 기업 관계자 70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주요국 경제 단체는 한목소리로 불안정한 전력 공급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주베트남 일본상공회의소(JCCI) 관계자는 지난해 5~7월 북부 지역 정전 사태를 언급하며 “전기가 불규칙하게 제공되면 기업이 생산 계획을 세우거나 납기일을 제대로 예측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는 예고 없는 정전으로 손해가 막심했던 지난해 경험 때문이다. 당시 베트남 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치솟으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했다. 수급이 달리자 5,000여 한국 기업이 몰려있는 북부 박닌, 박장, 하이퐁 등 주요 산업단지 전기 공급도 잇달아 중단됐다. 각 지방 성은 주 1, 2회 순환 정전에 나섰고, 가까스로 전기가 들어왔던 날조차 다시 끊기기 일쑤였다.
하이퐁시에서 소비재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인 A씨는 “갑자기 전기가 나가 라인에 물려 있는 제품을 내다 버리거나, 물품을 납품하지 못한 경우도 다반사였다”며 “공장을 한창 가동하는 낮에 몇 시간씩 전기가 끊긴 탓에 직원들이 하릴없이 기다리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전기 수요가 많은 시간대를 피하기 위해 밤에 공장을 돌리는 회사도 적지 않았다. 올해 선제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을 경우 또다시 산업 활동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력 부족, 베트남 투자 가로막는 요인”
포럼 참석자들은 전력난이 해외 기업의 베트남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선 주베트남 한인상공인연합회(KOCHAM·코참) 회장은 “많은 한국 기업, 특히 반도체 등 첨단기술 기업이 베트남 투자를 원하지만 반복되는 전력난 우려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전력 비축량 확보를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강조했다.
조셉 우도 주베트남 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회장도 “안정적이고 저렴하며 지속가능한 전력 공급이 없다면 베트남 경제 목표가 장애물에 부딪힐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세계은행(WB)은 지난해 전력난으로 베트남 국내총생산(GDP) 0.3%에 해당하는 14억 달러(1조8,700억 원) 규모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기업인들은 또 정전 계획 사전 통지, FDI 기업과 베트남 전력 당국 간 지속적인 대화 등도 촉구했다. 유럽 국가 관계자들은 재생에너지 사용 촉진 등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을 강조했다고 한 참석자는 설명했다. 이날 베트남 측은 송전 시스템 강화, 직접 전력 거래 장려를 포함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질적 개선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전력 공급 중단은 베트남의 고질적 문제이지만 해결이 쉽지 않아서다. 베트남은 발전량 대부분을 수력(46%)과 화력(51%)발전에 의존한다. 그런데 가뭄으로 댐 수위가 낮아지면 발전량이 70~80% 가까이 줄어든다. 석탄 수급과 환경 오염 문제로 화력 발전량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전력 공급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격화 속 베트남이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글로벌 제조 허브로 떠올라 해외 기업을 적극 유치할 수 있는 기회에서 전력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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