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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노무현' 실험 포기한 천하람

입력
2024.03.22 17:3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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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1월 31일 광주시의회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혁신당 천하람 최고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1월 31일 광주시의회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혁신당 천하람 최고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개혁신당이 총선 비례대표 후보 2번에 천하람 전 최고위원을 배치했다. 현재 여론조사상 당선권은 2번까지다. 보수정당에서 고집스럽게 호남 출마를 고수하던 젊은 개혁보수가 ‘신념’을 꺾고 손쉬운 길을 택한 듯 비쳐 아쉬움이 크다. 이준석 대표가 지역구에 발이 묶여 여론전을 펼칠 ‘스피커’가 없다는 당 차원의 판단이라고 한다. 탈당 전 국민의힘 순천갑(현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이었던 그는 소셜미디어(SNS)에 “어떤 이유에서든, 제 출마를 기다리신 시민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썼다.

□ 대구 출신 변호사인 그는 2020년 총선 때 험지인 순천에 출마해 낙선했다. 4년간 지역민심을 다져온 그는 지난해 12월 정치적 동지인 이준석과 신당 창당을 함께했다. 그는 윤석열 정권의 기울어진 당정관계를 공개 비판해온 드문 존재였다. 대통령 8·15 연설에 과거사 대신 “공산전체주의 맹종 반국가세력”이 나오자, “광복절 경축사가 아닌 6·25 기념사”라고 질타했다. 그렇다고 내용이 ‘내부총질’만은 아니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6·25 기념사 하면 북한 비판이 적어 전쟁영웅들 모셔다 놓고 할 얘기가 아닌데”라고 느낀 풍경과 비슷하다는 맥락이다.

□ 참여정부 때 정치인 유시민을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이 “저토록 옳은 소리를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라고 평가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준석의 도발적 언행을 천하람이 하면 무례하게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3·8 전당대회 때 ‘천하람 돌풍’이 일어난 것도 그의 종합적 풍모가 작용했을 것이다. 순천은 아무런 연고가 없던 곳이다. 가족과 내려가 장인·장모까지 모시고, 변호사 사무실도 개업했다.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상징적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 국민의힘 유흥수 고문은 작년 기자와의 인터뷰 때 “천하람 수도권 차출도 과감한 혁신 공천”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제 개혁신당이 비례득표에서 선전한다면, 친절하게 상대를 설복시키는 습성이 몸에 밴 천하람이 국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정치발전상 잘된 일이다. 그래도 아쉽다. 우직하게 지역주의에 맞선 ‘보수의 노무현’ 실험을 끝내 포기한 게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깝다.

박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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