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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이제 남의 나라 일 아니다

입력
2024.03.24 08:50
수정
2024.03.25 20: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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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전영훈 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전 대한통증학회 회장)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에서는 지금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문제가 큰 사회적 문제다. 2009년부터 사망 원인 1위가 마약이나 항정신성 약물 오·남용이었으며, 최근 10년간 50만 명이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미국은 전 세계 의료용 마약성 진통제 가운데 80%를 소비하는데 처방 관리 소홀로 환자가 여러 병원에서 중복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쉽게 마약성 진통제를 구하다 보니 중독·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이가 점점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2017년 ‘마약성 진통제 위기(opioid crisis)’라며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지만 별 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대표적인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의 처방이 최근 3년간 67% 급증했다. 환자가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쉬운 병원을 찾는 사례도 늘어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통증 치료를 위해 아세트아미노펜·소염 진통제·항우울제·항경련제·마약성 진통제 등 다양한 약물이 처방된다. 특히 중등도 이상 통증이라면 모르핀·펜타닐·옥시코돈 등의 마약성 진통제가 사용되고 있다.

대한통증학회가 2021년 전국 대학병원 통증클리닉을 찾은 만성 통증 환자 833명을 조사한 결과, 64.5%가 통증 치료를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쓸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독 우려 때문에 30% 정도만 약 처방을 받아 진통제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중등도 이상 통증은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불안감·우울증·수면장애·기억력 감소 등이 나타나 사회생활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심지어 10명 중 1명꼴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우리 정부는 마약성 진통제를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한 달 이상 처방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며 암 환자가 아니라면 하루 복용 용량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병원에서 처방된 약 종류와 용량이 다른 병원에도 정보가 공유된다. 마약성 진통제 남용을 막기 위한 관리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하지만 주사제는 포함되지 않고 사각지대로 남아 있어 병원에서 처방된 약이라도 중독이 발생하지 않는다 장담할 수는 없다.

따라서 마약성 진통제 용량을 줄이기 위해 약물을 복합 처방하거나 신경차단술·고주파 신경 파괴술·척추 외강 신경 자극기·척수강 내 약물 주입 펌프 설치 등의 방법이 시도된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일부 의사가 마약성 진통제를 남용 처방하거나, 불충분하게 처방해 환자가 약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위중독성(pseudo-addiction)’ 현상으로 통증 치료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통증학회는 매년 ‘약물 치료 워크숍 강좌’를 열어 마약성 진통제를 포함해 다양한 통증 약물 사용에 관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의사 스스로 시간·비용을 감수해야 하기에 많이 참여하지 않기에 지속적인 교육 환경이 만들어지도록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수술 후 극심한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펜타닐·모르핀을 소염진통제와 같이 쓸 때가 많다. 수술 후 통증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면 오심·구토·호흡 감소·혈압 저하 등이 생겨 병 회복을 방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유럽의 경우 수술 후 빠른 회복을 위해 전신·부위 마취를 병행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전신·부위 마취를 동시에 시행하면 전신마취제 투여량을 줄여 마취에서 회복이 빠르고 수술 후 통증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두 가지 마취를 동시 시행하면 하나의 마취법만 인정받기에 정부의 재고가 필요하다.

마약성 진통제는 통증 조절을 위해 분명 필요한 약이다. 하지만 오·남용 부작용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통증 환자가 마약성 진통제에 불필요하게 노출되는 것을 막고 약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의사와 환자 대상으로 마약성 진통제 사용 가이드라인에 대한 교육·홍보가 강화돼야 한다. 또한 현장 전문가와 유관기관의 중독자 조기 발견·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오기 전에 호미로 막아야 한다.

전영훈 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전 대한통증학회 회장)

전영훈 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전 대한통증학회 회장)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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