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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생각해보자

입력
2024.03.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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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3월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연병장에서 열린 행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3월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연병장에서 열린 행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집중호우로 실종된 주민을 찾기 위해 동원된 해병대 채모 상병은 지난해 7월 19일 오전 9시 3분쯤 “살려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14시간 만인 이날 오후 11시 10분쯤 주검으로 발견됐다. 해병대 정신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구명조끼 없이 급류에 투입된 스무 살 청춘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멀쩡한 사람이 죽었으니 책임을 따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사달이 났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의 군내 자체조사를 맡았던 해병대 수사단장이 돌연 보직 해임됐다.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이 상부 지시를 어기고 사건을 경찰에 넘겼다는 이유였다.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이 경찰에 이첩했던 사건을 회수했고 국방부 조사본부가 수사를 맡았다.

채 상병 사건의 본질은 업무상 과실치사. 대규모 인명 피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이 혐의의 적용 범위를 두고 논란이 적지 않았다. 가깝게는 이태원 참사가 그랬고, 10년 전 세월호 참사가 그랬다. 사안마다 다르지만 대개는 일반적 국민의 법 감정상 도의적 책임 이상을 물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은데 실정법상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사건도 채 상병 사망의 관리 책임을 어느 선까지 적용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윗선’과 박 대령의 견해 차이에서 사달이 났다. 일선과 지휘부 간 의견 차로 문제가 불거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수사외압 의혹도 따라붙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 신범철 차관, 이종섭 장관, 그리고 대통령실까지 잇달아 압박을 가한 대상으로 지목됐다.

‘윗선’ 개입 정황이 나오면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의혹은 더 커진다. 게다가 협의 과정이 아니라 사실상 결정이 난 상태에서 결론이 번복된 것으로 드러나면 의혹은 확신으로 굳어진다. 다음 수순은, 최근 유행을 넘어 대세로 굳어진 것처럼 고소ㆍ고발이다. 이번엔 검ㆍ경이 아닌 공수처가 그 대상이 됐을 뿐이다. 이종섭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는 공수처로선 당연히 취했어야 할 조치일 수 있다. 나중에 왜 출국금지하지 않았냐는 비판을 받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안전하다. 김진욱 전 처장 퇴임 직전에 국방부 등을 압수수색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건 발생부터 이종섭 주호주대사 임명 및 출국금지가 알려지기까지 갈등과 의혹이 커진 계기는 채 상병 사망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것인지에 대한 의견 차가 생겼을 때, 그리고 피의자로 입건된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했을 때, 이렇게 두 차례다. 이 두 상황은 과실치사 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수사외압) 혐의로 수사받고 형사 처벌을 받을 대상에 대한 박 대령과 공수처, 국방부 수뇌부 또는 용산의 시각과 입장이 달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대통령실의 판단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그 판단을 내린 주체가 누구인지, 또 얼마나 법리에 해박하고 수사 실무에 능숙한지 모르겠지만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기를 들 만한 상황을 야기한 건 납득하기 힘들다. 사건의 본질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보여지는 것 역시 중요한 법이다. 국민들이 왜 채 상병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책임 소재를 따지는지, 이 대사 임명에 의구심을 갖는지 처음부터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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