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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질 순 없지만...연애 안 하고 늙지 않는 '내 가수', 버추얼 아이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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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질 순 없지만...연애 안 하고 늙지 않는 '내 가수', 버추얼 아이돌이 왔다

입력
2024.03.20 07: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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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보이그룹 플레이브
음반 차트, TV 음악방송 1위
소수 마니아 문화였는데...
온라인 소통으로 팬덤 확장
가요계 무관 회사가 주로 제작
주요 기획사들도 관심

버추얼 5인조 보이그룹 플레이브. 블래스트 제공

버추얼 5인조 보이그룹 플레이브. 블래스트 제공

“겉으로 보이는 것만 다를 뿐 일반 아이돌 그룹과 똑같아요. 가상 아이돌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노래가 좋아서 팬이 됐어요. 멤버들 캐릭터와 케미(호흡)도 매력 있고요.”(40대 김모씨)

“사실적인 인공지능(AI) 3D 캐릭터는 싫지만 2D 애니메이션 캐릭터라 거부감이 없어요. 2D인데도 춤동작은 더 사실적으로 재현해서 진짜 같은 느낌이 들어요.”(20대 최모씨)

15일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 차려진 가상 보이그룹 '플레이브'의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팬들의 목소리다. 플레이브 굿즈를 판매한 팝업스토어 앞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예약에 성공한 팬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고, 플레이브 멤버들의 홀로그램 영상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에는 이른 시간부터 오랫동안 대기한 팬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달 1일부터 17일까지 운영된 팝업스토어 관계자는 “홀로그램 영상 촬영 부스 입장 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였는데 새벽 5, 6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 마련된 가상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 팝업스토어에서 팬들이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고경석 기자

15일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 마련된 가상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 팝업스토어에서 팬들이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고경석 기자


가상 아이돌 그룹, 음반 차트·음악방송 1위

컴퓨터그래픽으로 제작한 캐릭터와 실제 가수가 결합한 가상 아이돌 그룹은 한때 소수의 마니아들이 즐기는 하위문화였다. 이젠 TV 음악방송과 음반 차트 정상에 오르며 가요계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선두주자인 남성 5인조 그룹 플레이브의 두 번째 미니앨범은 지난달 발매 일주일 만에 57만 장이 팔려 서클차트 리테일앨범 주간 차트 1위에 올랐다. 9일 방송된 MBC ‘쇼! 음악중심’에선 1위를 차지했다. 1998년 사이버 가수 아담이 등장한 이래 2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가상 아이돌 그룹의 성공이 가요계를 놀라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K팝 산업과 무관한 업계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세계아이돌'은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의 BJ 우왁굳이 기획한 걸그룹이다. 플레이브의 소속사 블래스트는 18년간 MBC VFX(시각특수효과)팀에서 일한 이성구 대표가 꾸린 사내 벤처에서 시작했다. 이 대표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매체가 문자에서 사진, 영상으로 변화한 것처럼 앞으로 실시간 그래픽이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했다”며 “실시간 그래픽이라는 새로운 매체로 우리만의 지식재산(IP)을 만들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세계아이돌. 왁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세계아이돌. 왁엔터테인먼트 제공


"수천만 원이면 가상 아이돌 데뷔 가능해"

플레이브와 이세계아이돌은 AI 캐릭터와 달리 이미지 뒤에 ‘본체’, 즉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가수가 존재한다는 점에선 원조 가상 가수 아담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새로운 기술과 매체를 통해 팬들과 긴밀하게 소통한다는 점이다. 플레이브는 진일보한 게임 엔진과 모션 캡처 기술을 활용해 멤버들의 실제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구현하고, 매주 두 번 유튜브 실시간 방송에 캐릭터가 등장한다.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 버블에선 1대1로 팬들과 대화도 한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는 “과거엔 아이돌 그룹과 팬들의 소통이 TV 프로그램 녹화 현장, 콘서트 등 오프라인 공간에서 이뤄졌다면, 이제는 온라인 공간에서 실시간 대화를 한다"며 "가상 아이돌은 가상의 세계관으로 더 재미있는 요소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가상 아이돌 그룹은 포화 상태에 이른 K팝 시장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실체를 공개하지 않는 한 사생활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외모·나이와 관계없이 춤과 노래에 재능 있는 가수를 기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제작비가 적게 든다.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실물' 아이돌 그룹과 달리 가상 아이돌 그룹은 수천만 원 수준으로도 제작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플레이브는 데뷔 당시 이름 없는 회사 소속인 데다 가상 그룹이라는 특성 탓에 작곡가들에게 좋은 곡을 받기 어려워 멤버들이 직접 작곡하고 안무를 만드는 ‘자체 제작 아이돌’이 됐다.

이 같은 데뷔 과정의 서사와 그 속에서 변화하는 각 멤버들의 캐릭터는 팬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역경을 헤쳐가는 그룹의 성장 서사는 대형 기획사의 톱다운 제작 방식과 달리 유대감을 만들어 내며 보다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고 풀이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넷마블에프엔씨와 함께 선보인 버추얼 아이돌 '메이브'.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넷마블에프엔씨와 함께 선보인 버추얼 아이돌 '메이브'.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상 아이돌 그룹들의 빠른 성장을 주요 K팝 기획사, 엔터테인먼트 업체,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3D 가상 걸그룹 '메이브'를 내놓았고, SM엔터테인먼트는 올해 걸그룹 에스파의 세계관에 등장했던 가상 캐릭터 '나이비스'를 가수로 데뷔시킨다. 2011년 보컬로이드(음성 합성 소프트웨어) 가수 '시유' 제작에 참여한 방시혁 의장이 이끄는 하이브와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가상 아이돌 그룹을 내세운 오디션도 군소 업체들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대형 K팝 기획사 임원은 “가상 아이돌 인기가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시장이 커지면 메이저 회사들도 뛰어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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