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쿠르상 수상 작가 필리프 클로델
장편소설 한국 출간 기자간담회
“이주는 불가피, 난민과 마주해야 “
평온한 작은 섬에 시체 세 구가 떠내려 온다. 목격자는 일곱 명. 각각 시장, 교사, 의사, 신부, 노파, 어부, ‘미국’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남자 아메리크다. 각 권력을 상징하는 이들은 난민으로 보이는 익사체를 어떻게 처리할까. “이제 우리가 읽게 될 이야기는 당신의 존재만큼이나 실제적”이라고 서두에서 밝힌 프랑스의 작가이자 영화감독 필리프 클로델의 장편소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의 도입부다. 난민·이민자를 비롯한 현대 사회의 문제를 서늘한 우화로 꼬집는 작품이다.
소설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클로델은 19일 서울 서대문구의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화라는 형식으로 쓴 이유는 이 이야기가 어느 상황이나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나라로 가려던 이들이 시신으로 닿은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의 무대인 작은 섬은 난민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의 어떤 나라도 될 수 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클로델은 “전 세계 어느 지역도 다른 지역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살 수는 없다”면서 “지정학적으로 복잡한 위치에 있는 한국으로 당장 내일부터 난민이 몰려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상상해 봐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소설에서 ‘익사자들의 섬’이라는 오명을 두려워한 목격자들은 시체를 화산 구덩이에 던져 넣어 사건을 묻어버린다. 이 과정에서 반발하던 ‘교사’는 이렇게 항의한다. “시체가 몇 구나 되어야 (전화) 수화기를 드시겠어요, 다섯 구? 열 구? 스무 구? 아니면 백 구?” 그의 질문은 난민의 죽음이 더 이상 기사조차 되지 않는 현실을 비춘다. 클로델 역시 “지금 유럽에선 난민의 사망이 수치로만 다뤄진다”면서 “비극적이게도 유럽이 이민자들의 죽음에 익숙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자인 클로델은 문학을 ‘신발 속 돌멩이’처럼 성가신 것이라고 말해왔다. “작가의 역할은 책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는 그는 난민·이민자를 꾸준히 작품으로 다뤘다. 그는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 난민의 이동, 기후변화까지, 인구는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면서 “이런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경을 계속 폐쇄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클로델은 이어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제대로 이민자를 만나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접 마주하지 못했기에 타인을 위협으로 느끼는 벽이 마음속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문학을 비롯한 콘텐츠가 ”이민자가 위협이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알리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클로델은 “프랑스도 이민자들로 이뤄진 나라로, 다른 문화가 섞이며 과학, 학문, 문학이 풍요로워졌다”며 “이런 말들이 어쩌면 순진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공포보다는 신뢰와 믿음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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