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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빠지고 눈멀고… 명문대 여대생 29년 앗아간 범인, 룸메이트일까

입력
2024.03.22 04:30
수정
2024.03.22 10:1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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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중국 칭화대생 탈륨 중독 사건
스물한 살 주링, 독극물 중독에 고통
유력 용의자는 과 동기이자 룸메이트
조사는 단 한 차례… '외압' 의혹 증폭
후유증 시달리던 피해자 29년 만 사망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독극물에 중독되기 전 주링의 모습. 주링 재단 제공

독극물에 중독되기 전 주링의 모습. 주링 재단 제공

"안녕하세요.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는 모든 분들이 메일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1세의 젊은 학생이 심하게 아파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수많은 질병 검사를 받았지만 아직도 병명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1995년 4월 인터넷 게시판 '유즈넷 뉴스그룹'에 눈길을 끄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친구가 겪는 의문의 질병을 찾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죽어가는 친구를 지켜보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누리꾼이 밝혀낸 '탈륨 중독'

사연은 이랬다. 주린링(21), 주로 불리던 이름은 '주링'이었던 이 여대생은 1994년 베이징대와 더불어 중국 최고의 명문대로 꼽히는 칭화대 화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음악과 수영에도 뛰어난, 다재다능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돌연 주링의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주링은 그해 11월 말부터 복통 등 이상 증세를 느꼈다. 12월에 접어들자 머리카락이 빠지더니 시력이 떨어지고 눈이 아파 왔다.

이때 주링은 열심히 준비해 온 관현악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아픈 상태로도 그는 무대에 서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1994년 12월 11일 주링은 나빠진 시력 탓에 안경을 쓴 채로 무대에 올랐다. 주링은 중국 전통 현악기 고금으로 까다로운 고전 음악 '광링산' 독주를 훌륭하게 펼쳤다.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날 공연이 주링 인생 마지막 무대였다는 것을.

1994년 12월 11일 주링이 중국 전통 현악기 고금으로 중국 고전 음악 '광링산'을 연주하고 있다. 탈륨 중독 초기였던 주링은 시력 저하로 안경을 써야 했으며, 이날 이후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했다. 유튜브 상하이SMG 채널 캡처

1994년 12월 11일 주링이 중국 전통 현악기 고금으로 중국 고전 음악 '광링산'을 연주하고 있다. 탈륨 중독 초기였던 주링은 시력 저하로 안경을 써야 했으며, 이날 이후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했다. 유튜브 상하이SMG 채널 캡처

주링의 몸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그의 어머니는 후일 "주링의 등이 아프기 시작했고, 이어서 다리와 배가 아팠으며, 결국 몸 전체가 아팠다"며 "주링의 머리카락은 며칠 만에 다 빠졌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병원에 입원해 수없이 많은 검사를 받았지만 주링의 병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급기야 주링은 1995년 3월 혼수상태에 빠졌다.

같은 해 4월 베이징대를 다니던 주링의 친구 베이즈청은 주링의 병문안을 갔다가 급격히 나빠진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친구를 도울 길이 없을지 고민 끝에 묘수가 떠올랐다. 인터넷이 중국에 상륙하기 시작한 1995년 베이징대는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중국 내 소수의 기관 중 하나였다. 베이즈청은 인터넷에 도움을 요청했다.

주링의 목숨을 구한 건 누리꾼이었다. 베이즈청은 전 세계에서 날아든 1,500여 장의 영어 답장을 빠르게 해석할 수 없었지만, 반복된 같은 단어가 눈에 걸렸다. '탈륨(thallium)'. 일반인이 쉽게 얻을 수 없던, 인체에 치명적인 독극물이었다. 안개에 싸였던 주링의 병명은 결국 '탈륨 중독'으로 판명 났다. 해독제 '프러시안블루'로 치료가 시작됐고 주링은 8월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이미 수개월간의 중독으로 마비, 지적 장애 등 영구적인 후유증을 얻은 뒤였다.

주링은 탈륨과 접촉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검사 결과 그의 신체 샘플에서는 기준치의 1만 배에 달하는 탈륨이 검출됐다. 누군가 주링을 탈륨에 중독시킨 것이 분명했다. 1995년 5월 베이징 공안의 수사가 개시됐고, 같은 칭화대 화학과 실험실에서 탈륨을 얻을 수 있던 사람이 주링의 지척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칭화대 화학과 2학년, 주링의 학과 동기이자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쑨웨이(21)였다.

쑨웨이는 1997년 4월 2일 베이징 공안국에서 용의자 신분으로 8시간 동안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이 조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날 조사 이후 쑨웨이는 다시는 소환되지 않았다. 주링의 가족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수사는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주링의 사건은 멈춰 섰다.

다시 들끓은 여론… 쑨웨이 입을 열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2005년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은 중국의 대형 온라인 게시판 '천야 클럽'에 게시되며 재조명됐다. 주링의 친구 베이즈청을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쑨웨이가 다재다능하고 아름다운 주링을 질투해 독살을 시도했다'고 의심했다.

특히 쑨웨이에 대한 수사가 석연찮게 끝난 데 대해서도 의심이 제기됐다. 여기에 쑨웨이의 할아버지 쑨웨치가 장쩌민 전 주석과 가까운 고위층이고, 쑨웨이가 쑨푸링 전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의 조카라는 이야기가 더해지자 사람들의 물음표는 느낌표가 됐다.

여론이 들끓자 쑨웨이도 입을 열었다. 쑨웨이는 반박 게시물을 올려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해자를 심판대에 세우고 싶다"고 토로했다. 쑨웨이에 따르면 칭화대의 약품 관리는 허술했고, 그는 탈륨에 접근할 수 있었던 유일한 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주링과 싸우지 않았으며 주링을 중독시킬 동기가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고위층 할아버지가 손을 써 풀려났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할아버지는 조사 당시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그는 1998년 8월 이미 혐의를 벗었다며 "경찰은 나와 주링 독살 사건의 관련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쑨웨이를 여전히 불신했지만 상황을 바꿀 방법도 없었다. 시끄러운 여론에도 끝내 공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주링과 쑨웨이는 다시 한번 사람들의 기억 저편에 묻히는 듯했다.

2013년 '판박이' 사건… 주링을 떠올렸다

한 시민이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의 청원게시판 '위더피플'에 2013년 5월 3일 "주링이 피해자였던 중국 탈륨 독살 사건의 유력 용의자 재스민 쑨을 수사하고 추방하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 청원은 답변 기준인 10만 명을 훌쩍 넘긴 1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미 백악관 위더피플 홈페이지 캡처

한 시민이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의 청원게시판 '위더피플'에 2013년 5월 3일 "주링이 피해자였던 중국 탈륨 독살 사건의 유력 용의자 재스민 쑨을 수사하고 추방하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 청원은 답변 기준인 10만 명을 훌쩍 넘긴 1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미 백악관 위더피플 홈페이지 캡처

주링 사건으로부터 19년이 흐른 2013년 5월 3일 또 하나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주링이 피해자였던 중국 탈륨 독살 사건의 유력 용의자 재스민 쑨을 수사하고 추방하라". 이번 공론장은 중국이 아닌 미국, 그것도 백악관 홈페이지의 청원 게시판 '위더피플'이었다.

주링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는 이 시기 일어난 '상하이 푸단대 의대 대학원생 독살 사건'이었다. 이 사건도 명문대 내 독극물 살인사건이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학과에 재학 중인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주링과 쑨웨이를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았다. 관심이 커지며 쑨웨이가 '재스민 쑨'으로 개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쑨웨이를 풀어준 중국 당국에 대한 불신도 폭발했다. 중국 대중은 백악관 홈페이지로 몰렸다. 주링 사건 청원은 단 5일 만에 14만 명의 서명을 끌어모으며 백악관 답변 조건인 '10만 명 서명'을 훌쩍 넘겼다.

백악관은 주링 사건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청원상 요청(쑨웨이 재수사 및 추방)에 대한 논평은 거부한다"고 밝혔다. 위더피플 약관상 백악관은 행정부나 사법부가 관할하는 법 집행·판결 등의 사안에 답변을 거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론이 달아오르자 다른 한편에서도 입을 뗐다. 2013년 5월 8일 베이징 공안국은 처음으로 이 사건에 대해 성명을 냈다. 공안국은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주링이 중독 증상을 보인 때부터 사건이 공안기관에 신고된 시점까지 거의 반년이 지났다"며 "증거가 사라지는 등 객관적인 요인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공안 성명 그 어디에도 유일한 용의자였던 쑨웨이가 왜 풀려났는지 나와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했으나 공안은 다시 입을 열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주링의 29년

주링의 탈륨 중독 전(왼쪽)과 후(오른쪽) 사진. 주링은 21세였던 1994년 탈륨에 중독된 여파로 29년간 후유증에 시달린 끝에 2023년 12월 사망했다. 주링 재단 제공

주링의 탈륨 중독 전(왼쪽)과 후(오른쪽) 사진. 주링은 21세였던 1994년 탈륨에 중독된 여파로 29년간 후유증에 시달린 끝에 2023년 12월 사망했다. 주링 재단 제공

대중의 분노는 거셌지만 수십 년은 긴 세월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또 사그라졌다. 그러나 주링의 비극은 스물한 살 겨울부터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세계적 명문대를 다닐 만큼 총명했던 주링은 여생을 6세 지능으로 보냈다. 하지 마비와 시력 손상도 회복하지 못했다.

주링은 결국 2023년을 넘기지 못하고 향년 50세로 눈을 감았다. 탈륨 중독 29년 만이었다. 주링의 모교 칭화대는 지난해 웨이보를 통해 "주링이 2023년 12월 22일 베이징에서 사망했다"고 알렸다. 주링은 그해 11월부터 발열과 뇌종양 증상을 겪은 끝에 사망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주링 사건이 대중의 분노와 동정을 산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주링에게서 자신을 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불의를 겪었지만 당국의 공정하고 독립적이며 투명한 조사는 전혀 없었다." 미국의 비영리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의 중국 연구 책임자 야초왕은 미 CNN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링을 29년간 고통의 수렁에 밀어 넣은 사람은 정말 그의 룸메이트였을까. 진실 역시 수렁에 묻혀 있다.

김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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