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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너마저..." 개성 잃고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대학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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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너마저..." 개성 잃고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대학 상권

입력
2024.03.19 04:30
수정
2024.03.27 17:45
2면
0 0

황폐화 이대, 임대 팻말 걸린 신촌 거리
'젊음의 상징' 홍대도 일부만 명맥 유지
임대료 폭등에 코로나, 中 관광객 영향
상권 쏠림 가속... "정체성 회복 힘써야"

17일 오후 찾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 골목에 입점한 가게가 하나도 없어 거리가 한산하다. 이서현 기자

17일 오후 찾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 골목에 입점한 가게가 하나도 없어 거리가 한산하다. 이서현 기자

"확실히 상가 수요가 줄었어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A씨는 주변 상가를 둘러보며 혀를 찼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홍대 바로 앞길까지 꽉 들어찼던 인파가 이제는 지하철역 인근에만 몰린다고 했다. 실제 이날 홍대 정문부터 '홍대 걷고 싶은 거리'까지 150m 길에 있는 상가 다수는 비어있었다. A씨는 "목이 좋다는 홍대가 이 정도"라며 "경기침체는 계속되는데 폭등한 임대료는 그대로니 상인도 손님도 오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젊은 트렌드를 이끌던 대학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위기설에 휩싸였던 이화여대·신촌은 고사 직전이고 홍익대·고려대·건국대 일대도 활력을 잃었다. 당연히 치솟은 임대료 탓이 크다. 하지만 신흥·대형 상권의 부상과 대학가 특유의 개성을 잃은 것도 소비자가 외면하는 이유다.

"이제 성수동에서 놀아요"... 대학가의 몰락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거리의 한 건물에 철거를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 이서현 기자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거리의 한 건물에 철거를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 이서현 기자

이날 찾은 이대 앞 거리도 '여성패션의 성지'라던 과거의 영광을 무색게 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이대역부터 대학 정문까지 이어지는 300m '이화여대길'에는 1층 상가 11곳이 공실 상태였다. 메인 대로를 벗어나면 더 심각하다. 이화여대 5길 골목 초입 30m는 입점한 가게가 전무했다. 서서히 몰락하던 상권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임대료를 정점 때의 3분의 1 수준으로 내려도 들어오려는 상인이 없고,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상점들도 다 떠났다고 한다. 부동산 업자 B씨는 "부활하려면 최소 15년은 걸릴 것"이라며 앞날을 비관했다.

인접한 신촌 상권도 사정은 비슷했다. 신촌역과 연세대를 잇는 '연세로'에는 노란색 '임대' 팻말이 점차 늘고 있다. 아예 4층짜리 건물 전면에 '전층 임대' 현수막을 걸어놓기도 했다. 연세대 졸업생 김모(27)씨는 "신촌, 이대 주변이 가게들로 넘쳐났던 시절이 언제인가 싶다. 추억마저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의 한 건물에 '임대' 팻말이 붙어있다. 이서현 기자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의 한 건물에 '임대' 팻말이 붙어있다. 이서현 기자

두 상권의 몰락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서울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5.8%를 기록한 반면, 신촌·이대 지역은 3배에 육박하는 18.3%에 달했다. 전 분기(22.0%)보다 소폭 감소했다 해도 2015년 2분기부터 2년 넘게 공실률 0%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처참한 지표다. 홍대·합정 일대 중대형 상가 공실률(9.8%)도 여전히 서울 평균(8.4%)보다 높다.

위기감은 다른 대학 상권으로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광진구 건국대, 성북구 고려대 등 일대도 성수동이나 청담동 상권에 손님을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고려대 재학생 이모(22)씨는 "이왕 놀 거면 요즘 유행을 반영한 연남동, 성수동이나 복합 쇼핑몰을 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상권 양극화 극복하려면 차별성 꾀해야"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앞 대로에 있는 한 건물. 공실이 된 지 오래된 듯 입구에 낙서가 가득하다. 이서현 기자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앞 대로에 있는 한 건물. 공실이 된 지 오래된 듯 입구에 낙서가 가득하다. 이서현 기자

침체 원인은 복합적이다. ①2010년대 들어 연남동처럼 기존 상권 주변에 신흥 소비처가 생기며 유입 인구가 줄었고 ②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이후 떠난 중국인 관광객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③코로나19를 계기로 감소한 대학생 수요 역시 회복되지 않았다.

④여기에 수요 흐름을 읽지 못한 탁상행정도 한몫했다. 서울시는 11년 전 이대 앞을 '쇼핑·관광 권역'으로 지정해 의류·미용 중심 거리로 육성하기로 했다.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대학생 소비자를 견인할 카페나 음식점은 둘째 치고, 오프라인 의류 수요까지 줄면서 쇠퇴를 거듭했다. 지난해 3월 권역이 해제됐지만 상인들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고 당국을 성토한다. 악재는 계속 쌓이는데, 오른 임대료는 요지부동이니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상인들을 머물게 할 뾰족한 해법이 안 보이는 것이다.

대형 쇼핑몰로 대변되는 특정 상권 쏠림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위기 극복도 쉽지 않다. 역으로 과거 상권마다 고유 감성으로 무장했던 대학가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떠난 손님들의 시선을 되돌릴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대학 주변에도 프랜차이즈 업체만 즐비하다 보니 굳이 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복합쇼핑몰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주 내부를 바꿔 새로움을 추구하는 젊은층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대형 상권은 앞으로도 수요를 유지해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대학가가 살아남으려면 차별성을 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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