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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위기’ 시대에 만연한 자살을 생각한다

입력
2024.03.16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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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의 사회

지난달 28일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난달 28일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저출산’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매년 3월을 전년도 합계출산율 발표에 습관적으로 놀라며 시작한 지 몇 년째다. 올해 발표된 작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연초 KBS 특별 대담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출산율 1.0명이 목표”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와 같은 가족계획 표어가 난무하던 1970, 80년대 삼남매를 낳으신 내 어머니는 “그때는 낳지 말라고 난리 더니 이제는 낳으라고 난리냐”라는 말로 이 상황을 매우 적절히 논평하셨다. 나는 이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즉 출산율 목표는 필요에 따라 낮출 수도 있는 것으로서 낮은 출산율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한 사회가 일정한 규모로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출산율이 낮아지게 된 여러 사회적 요인들이다. 저출산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저출산’과 ‘저출생’ 중 어느 용어가 더 적절한지는 논쟁 중이다. 인구학적으로는 두 용어의 의미가 다르다. ‘출산율’은 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녀 수이고, ‘출생률’은 특정한 지역에서 태어나는 영아 수를 의미한다. 또한 ‘저출산’이라는 말이 여성을 아이를 낳는 도구로 환원하기에 ‘저출생’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저출산’을 여성들의 적극적 선택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니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는 ‘저격해야 할 페미니스트’라는 식의 단선적인 반응은 옳지 않다.)

1974년에 나온 산아제한 공익 광고에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적혀있다. 국가기록원

1974년에 나온 산아제한 공익 광고에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적혀있다. 국가기록원

다시 한국 사회의 출산율에 대한 반응으로 돌아오자. 한국 사회의 저출산/생 담론은 주로 경제성장률, 연금분담률, 지역 소멸과 연결되어 말해진다. 이는 저출산이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고 보게 만들며 아이와 여성을, 그리하여 모든 인간을 국가의 수단으로 보게 만드는 사고방식과 감성을 강화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를 위시해 많은 학자들이 규명한 바, 인구가 통치 대상이 된 것은 근대국가의 등장과 궤를 같이한다. 즉, 인구로서의 인간은 국가의 일종의 도구다. 이는 시장 경제 논리가 사회 전 영역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도구로서만’ 취급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은 도구적이지(만은) 않은 관계들을 통해 살아갈 만한 것이 된다. 그것이 우리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복잡다단한 이유의 핵심에는 아이도, 자신도, 이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지 못 할 것 같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자리한다. 사람을 사람으로서 환대하지 않고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사회에 대한 불신과 절망이 있는 것이다.

폐교된 서울 광진구 화양초 앞으로 지난달 13일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폐교된 서울 광진구 화양초 앞으로 지난달 13일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의 사회

이런 면에서 높은 자살률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낮은 관심은 시사적이다. 태어나지 않은 이에 대한 많은 말들과 근심과 조바심에 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한국 사회가 전통적으로 자살을 금기시하기는 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치솟은 자살률이 그 후로도 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순위를 차지해 왔음에도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왜일까? 나는 그 이유를 사람의 도구화에서 찾는다. 저출산을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발상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면에서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은 사람을 도구로만 대하는 이 사회에 대한 통렬한 문제제기인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 행위로서의 자살은, 삶이 복잡한 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이유들의 결합과 지난한 과정의 결과물이다. 동시에 자살은 ‘사회적’이기도 하다.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상실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죽이는데 의미와 정체성이란 타인과의 관계와 그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살은 ‘젠더적’이다. 젠더는 사회를 조직하는 기본 원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여성 자살률만이 문제라는 의미로 읽지 않기 바란다. 이 문장은 어떤 이의 자살을 살필 때 그의 계급, 계층적 상황, 연령과 더불어 성별적 상황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청년 (여성) 자살에 답해야 한다

자살률은 10만 명당 자살하는 이의 숫자를 가리킨다. 한국은 2022년 기준 25.2명이었는데 이는 OECD 국가 평균 10.7명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2위인 리투아니아의 18.5명과도 차이가 크다. 국제적으로 한국의 자살률은 비슷한 경제 규모의 OECD 국가들보다는 수리남(2019년 기준 25.9명), 짐바브웨(23.6명), 중앙아프리카 공화국(23명), 러시아(21.6명) 등의 나라들에 가깝다.

자살률이 워낙 높기 때문에 한국의 자살률이 전 연령대와 남녀 모두에서 OECD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점은 10대에서 30대까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것이다. 하루하루 생의 비밀에 눈떠가며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찬 시간을 보내도 모자란 이 시기에 한국의 청년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10~30대 자살 성비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자살 성비란 여성 자살률에 대한 남성 자살률의 비율이다. 2020년 OECD 국가 기준 자살성비는 4에서 7을 넘나들어 여성에 비해 남성 자살률이 훨씬 높다. 반면 한국의 자살 성비는 2.2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다. 20대는 1.37, 30대는 2로 더 낮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지금 남녀 자살률 차이가 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볼 때 여성 자살률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많은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의 자살률은 남성의 자살률보다 높았지만 근대화 이후 이런 상황은 역전되었다. 핵가족화에 따른 남성 가장의 부담 증가라는 설명도 있고 보다 효과가 확실한(?) 도구의 발전과 이에 대한 성별 접근성이 다르다는 설명도 있다. 예컨대 총기와 같이 목숨을 끊는데 실패가 거의 없는 도구는 남녀가 가진 자원의 격차와 성별에 따라 다른 문화적 관습 때문에 남성이 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의 자살 시도율은 남성의 그것보다 2배 이상 높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이는 여성이 자살을 시도할 만큼의 사회적 요인들은 남성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많지만 위와 같은 요소들로 인해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와중에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남녀 자살률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한국의 전체 자살률이 2011년 이후 2017년까지 꾸준히 감소하다가 2018년부터 다시 증가했다는 것, 30대 이하 남녀 청년 자살률이 특히 많이 증가했으며 그중에서도 여성 청년 자살률이 치솟았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2017년 대비 2021년의 20대 남성 자살률은 30.3%, 30대 남성 자살률은 3.1% 증가했다. 같은 기간 20대 여성 자살률은 71.9%, 30대 여성 자살률은 27.8% 증가했다.

자살이 사회적인 사실이라는 건 그것이 자살자들만의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위 한국의 ‘결혼 및 가임 적령기’ 청년들은 동세대 친구들이 충분히 살기 전에 서둘러 죽음으로 투항하는 이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어릴 적부터 IMF 외환위기를 겪고 생존경쟁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자랐고, 역사상 가장 심각한 청년 실업 및 ‘강남역 살인사건’, ‘N번방 사건’ 등 온오프라인 젠더 폭력은 이들의 일상이다.

부패한 대통령을 시민의 손으로 탄핵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고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 사태를 나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여긴 시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 그리고 청년 여성이 급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저출산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만큼 높은 자살률도 그러하다. 여기에 응답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기 바란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와 서한영교 작가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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