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누부 대통령, '갱단 납치 척결' 공약에도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4700명 이상 피랍
치안 부재·경제난에 몸값 노린 납치 횡행
"우리에겐 군인도 없고, 경찰도 없습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무장 갱단이 어린이 287명을 납치한 나이지리아 북서부 카두나주(州)의 한 학교. 졸지에 자녀 5명이 생사 불명 상태에 놓인 한 어머니 라시닷 함자는 AP통신에 이렇게 토로했다. 이 학교를 비롯해 최근 일주일 사이에만 벌써 3번에 걸친 집단 납치 범죄로 500여 명이 피랍됐다.
아프리카 최대 인구 대국인 나이지리아가 또다시 몸값을 노린 집단 납치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①치안 공백 ②최악의 빈곤은 나이지리아에서 납치가 기승을 부리는 배경으로 꼽힌다.
일주일 새 500여 명… 집단 납치, 다시 기승
외신에 따르면, 카두나주의 학교에서 7~18세 학생 최소 287명이 납치된 이후 9일에는 서북부 소코토주 바쿠소 마을 기숙사 학교에서 자고 있던 어린이 15명이 피랍됐다. 앞서 지난 6일에도 동북부 보르노주에서 어린이와 여성 200여 명이 끌려갔다. 오토바이를 타고 무장한 채 나타난 괴한들에 의해서다.
이번 대규모 납치 사건은 10년 전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이른바 '치복 납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고 BBC는 전했다. 2002년 나이지리아 북부에 똬리를 튼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보르노주 기숙학교 여학생 276명을 끌고 간 사건이다.
다만 이번 납치의 배후를 자처한 세력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보코하람이나, 정착민과 갈등을 빚고 있는 유목민으로 구성된 현지 무장단체의 소행으로 의심되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나이지리아의 정보 회사 SBM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볼라 티누부 나이지리아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해 5월 이후에만 4,700명 이상이 납치됐다. 티누부 대통령은 갱단의 납치 범죄 척결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했지만 속수무책인 셈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아프리카 책임자인 알렉스 바인스는 "많은 지역에서 무장 갱단이 정부를 대체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고 BBC에 말했다.
"경제난으로 납치 여건 조성돼"… 세 불리는 갱단
특히 납치가 빈발하고 있는 북부 지역은 치안 부재 상태다. 정부군은 이 지역에서 14년간 무장단체를 겨냥한 군사 작전을 전개하고 있지만 그 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니제르와 마주한 북서쪽 약 1,500㎢에 이르는 국경의 광활한 숲은 조직화된 갱단에 피신처를 제공하고 있다. 허술한 국경을 통한 무기 밀수입도 손쉽게 이뤄진다.
게다가 무슬림이 다수 거주하는 북부는 기독교인이 주로 사는 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한 빈곤과 불평등에 시달려왔다. 이 지역에 보코하람 같은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자생 테러단체가 창궐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서구식 교육을 죄악시하는 보코하람은 당초 학교에 다니는 젊은 여성을 표적으로 한 납치를 일삼았다. 교육받는 여성들을 겁박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몸값을 노린 납치로 점차 변모했다. 2022년 7월부터 1년간 납치범이 요구한 몸값은 총 50억 나이라(약 83억 원)에 달한다고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방송은 전했다. 일부는 몸값으로 돈이 아닌 식료품, 오토바이, 휘발유를 요구할 정도다. 인질에 대한 몸값 지불을 금지하는 법안이 2022년 나이지리아 국회를 통과했지만 힘을 못 쓰고 있다.
세네갈에 본사를 두고 있는 '14 노스 스트레티지'의 윌리엄 린더 대표는 "나이지리아의 열악한 경제 상황이 납치를 위한 여건을 조성한다"며 "특히 최근 6개월간 식량 가격이 급등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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