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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수난 그린 300년 전 바흐의 예배 음악 '요한수난곡'의 울림과 가치

입력
2024.03.10 13:00
수정
2024.03.10 13:5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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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바흐 요한수난곡'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지난 6일 김선아 지휘자가 이끄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흐의 '요한수난곡'을 연주하고 있다. ©Brantist

지난 6일 김선아 지휘자가 이끄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흐의 '요한수난곡'을 연주하고 있다. ©Brantist

20세기 바흐 연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은 시대악기와 역사주의 연주 방식을 연구하고 재현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낭만시대를 거치는 동안 원곡 악보에 덧입혀진 편곡과 편집을 떼어 내고, 음악 원류를 이해하고 감상하려는 활동이다. 바흐 시대의 관점에서 작품을 수용하려는 연주 운동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존 엘리엇 가디너, 필리프 헤레베헤, 지기스발트 쿠이켄, 톤 쿠프만 등 바흐 연구가들을 통해 퍼져 나갔다.

바흐 음악에서 성악 연구, 특히 합창 발성과 주법 연구는 기악보다 늦었다. 이 시대의 발성에선 길고 느릿한 호흡, 바이브레이션, 과장된 감정 표현과 열창보다는 기악 주법처럼 짧게 끊어 표현하는 아티큘레이션,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 노래)를 통해 웅변하는 수사학적인 해석이 중요하다. 스즈키 마사키가 이끄는 일본의 시대악기 연주단체 바흐 콜레기움 재팬은 2003년 바흐의 세속 칸타타 전곡 녹음으로 바흐 성악 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갖게 됐다. 한국은 2002년 시대악기 앙상블인 무지카글로리피카, 성악 앙상블인 바흐솔리스텐서울 등의 활동과 2005년부터 한양대 음악연구소가 이끈 '서울국제바흐페스티벌'이 중요한 기점이 됐다. 국내 시대음악 애호가들은 뛰어난 한국 음악가들이 이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주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지난해 '마태수난곡' 이어 올해는 '요한수난곡'

지난해 3월 김선아 지휘자가 이끄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연주하고 있다. ©Brantist

지난해 3월 김선아 지휘자가 이끄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연주하고 있다. ©Brantist

지난해 3월 김선아 지휘로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당대 악기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처음 무대에 올렸다. 홍민섭, 정민호, 김효종 등 세계적인 수준의 솔리스트들의 활약도 놀라웠지만 순도 높게 다듬어진 합창 발성, 백승록이 이끄는 시대악기 연주 앙상블의 완성도는 감동을 넘어 뿌듯함을 안겨줬다. 이 기념비적 무대는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2회 서울예술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한국 공연사의 중요한 기록이 됐다.

지난 6일 이들은 바흐의 첫 수난곡이었던 '요한수난곡'을 연주했다. '마태수난곡'은 예수의 수난을 중심으로 죽음에 대한 슬픔, 박해당하는 자들과 함께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한탄을 비극의 음조로 노래한다. 합창은 대부분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요한수난곡'에서 합창은 예수의 죽음을 슬피 노래하기도 하지만, 예수의 재판 장면을 설명하거나 예수를 핍박하고 비난하고 빌라도를 향해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 지르는 당대 군중의 목소리로 등장한다.

음악사적으로도 의미 큰 바흐의 종교음악

김선아 지휘자. ©Brantist

김선아 지휘자. ©Brantist

피터 셀라스가 극 연출을 가미하고 사이먼 래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 연주 영상을 보면 두 작품의 이미지가 극명하게 비교된다. '마태수난곡' 합창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탄식이 주된 정서다. '요한수난곡'은 첫 곡 '주여, 우리를 다스리는 통치자여'부터 어둡고 격렬한 군중의 움직임과 표정이 부각된다. 합창 음악의 수사학적 역할과 극적인 부분을 훨씬 더 강조한다. 이 작품을 예배 중에 만나야 했던 당대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군중 속 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에 자극받고 두려움과 아픔에 더 공감했을 것 같다.

바흐가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교회의 칸토르(음악감독)로 취임하고 '요한수난곡'을 완성한 해로부터 300년이 지났다. 종교적 내용이지만 바흐의 작품을 세속음악으로, 아니 음악 자체로 연구하고 감상해야 하는 이유를 떠올려 본다. 1841년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라이프치히 중심 무대에 기어이 올려놓은 멘델스존의 활동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당시는 바흐 음악의 효용 가치를 회의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멘델스존은 바흐를 중심으로 독일 음악의 전통을 주도했다. 멘델스존의 노력이 없었다면 서양 고전음악의 역사가 지금처럼 존재할 수 있었을까.

'콜레기움'은 16~18세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연주단체다. 콜레기움 쾰른, 바흐 콜레기움 재팬처럼 지명을 붙여 도시와 나라를 대표하는 시대음악 연주단체로 활동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16세기 음악의 원류를 콜레기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한국 연주자들을 통해 더 가깝게 만나게 됐다. 김선아가 이끄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그리고 더 많은 시대악기 연주자들의 활동에 감사를 전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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