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시범사업 이후 '표준 마련' 공언
2년 연속 예산 확보 못해 제자리걸음
"업계 자율시스템 기대" 효과는 미지수
환경부가 택배 포장재 낭비를 막기 위해 ‘다회용 택배상자’ 사용을 활성화하기로 하고 직접 표준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중단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일 ‘택배 과대포장 기준’ 단속 2년 유예를 발표하면서도 “다회용기 사용을 유도해 업계의 자원순환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정부가 대안과 예산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한국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환경부가 지난해 상반기까지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다회용 택배상자 표준(안)’은 아직 첫발도 떼지 못한 상태다.
환경부 발표는 다회용 택배상자 시범사업을 마무리한 2022년 9월에 있었다. 국내 유통기업 5곳, 물류기업 3곳과 함께 2021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다회용 택배상자를 이용한 물류 배송을 실험하며 환경성 개선 효과를 평가한 사업이었다. 그 결과 일회용 대신 다회용 상자를 쓰면 회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74.5% 줄어들고 폐기물 발생량도 99% 감소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문제는 경제성이었다. 다회용 택배상자를 사용할 경우 배송원가가 일회용에 비해 3.9% 늘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폐기물협회가 소비자 2,40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다회용 포장에 따른 택배 비용 상승분이나 회수 보증금을 납부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이 34%에 그쳐 비용 전가도 여의치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환경부는 다회용 수송 포장을 표준화해 물류비를 절감하는 대책을 구상하고 이듬해까지 표준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여러 유통업체가 공통 규격의 다회용 상자를 사용하면 보관·이송 과정에서 물류 효율이 높아질 거란 진단이었다. 아울러 환경부는 “2024년부터는 다회용 택배상자 보급사업을 본격 추진하겠다”며 예산을 확보해 택배상자 제작, 세척·집하시설 설치 등 초기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편성한 2023년 예산안에서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계획은 이행되지 못했다. 환경부는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에 협조를 요청해 사업을 이어가려 했으나, 정부 예산이 없는 상황이라 정책 추진 동력이 생기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다회용 택배 포장 활성화 예산은 올해도 책정되지 않았다. 환경부는 이날 유통·택배업체 19곳과 ‘유통산업 순환경제 선도기업 얼라이언스 업무협약’을 맺고 다회용 택배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은 이미 다회용 보냉가방 택배 등을 시도한 경험이 있으니 민간에 주도적 역할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당초 계획했던 상자 표준안 제작 및 보급, 시설 설치 지원 등의 뒷받침 없이 기업의 자율 규제에 기대는 정책이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택배 폐기물을 줄이려면 다양한 제품 크기에 맞춰 포장을 개선하고 다회용 포장을 적용하는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져야 하지만, 예정된 과대 포장 규제마저 완화(2년 계도기간 부여)한 상태로는 시장 조성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업계 자율협약에 의존하지 말고 계도 기간에 정부가 기업의 포장 기준 이행 여부를 주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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