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 업체 취업 금지 약속 어기고
퇴사 후 마이크론 본사 임원으로
법원 "정보 유출시 원상회복 불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갖춘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기술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반도체 업체로 적을 옮긴 연구원에 대해 법원이 '이직 금지'를 결정하며 제동을 걸었다. 이 연구원은 최근 메모리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 전문가다.
7일 법조계와 반도체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 김상훈)는 하이닉스가 전직 연구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달 29일 인용했다. 이를 어기면 하루당 1,000만 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A씨는 7월 26일까지 마이크론사와 각 지점, 영업소, 사업장 또는 계열회사에 취업 또는 근무하거나 자문·고문·용역·파견계약 체결 등의 방법으로 자문·노무 또는 용역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A씨는 하이닉스에 입사해 메모리연구소 설계팀 주임 연구원, D램설계개발사업부 설계팀 선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또 HBM 사업 수석, HBM 디자인부서의 프로젝트 설계 총괄 등으로 근무하며 D램과 HBM 설계 관련 핵심 업무를 담당하다가 2022년 7월 26일 퇴사했다. 이후 마이크론 본사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임원 직급으로 입사했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성능 메모리로,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제품이다. HBM 쪽에선 하이닉스가 선두권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마이크론은 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추격 중인 후발주자다.
A씨는 하이닉스 근무 당시 전직금지 계약을 맺었다. 2015년부터 매년 '퇴직 후 2년간 동종 업체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정보보호서약서를 작성했고, 퇴직 무렵에는 마이크론 등 경쟁업체 전직금지 약정서와 국가핵심기술 등의 비밀유지서약서도 썼다.
법원은 하이닉스 손을 들어줬다. A씨가 회사를 옮길 경우 핵심 기술 유출의 우려가 크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A씨가 재직 당시 담당한 업무와 지위, 업무를 담당하며 얻게 된 것으로 보이는 회사의 영업비밀 등을 종합하면 약정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하이닉스의 이익이 인정된다"며 "정보가 유출될 경우 원상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한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 반도체 업체는 중국 등 후발 생산국의 기술 유출 먹잇감이 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핵심기술(해외 유출시 국가 안보·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포함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 적발 건수는 23건이었다. 이 중 대다수인 15건이 반도체 분야 기술이었다.
연도별 적발 건수는 △2019년 14건 △2020년 17건 △2021년 22건 △2022년 20건 △2023년 23건 등으로 증가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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